▲일상이 되었던 해변 산책길. 바다도 하늘도 참 푸르다.

“왜 이렇게 아쉽냐! 어?”

밤바다에 괜히 신경질을 냈다. 바람이 세니 바다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날이다. 한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렸다. 처음엔 이 도시에 겁만 먹었는데 그 사이 정이 들었나보다. 왠지 모를 헛헛함이 내일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으면 계속 뒤돌아보게 될 거 같아 걱정이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선 사진을 많이 찍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보였다. 내가 자주 걷던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를 찍고, 익숙해진 길거리와 건물들을 찍었다. 여전히 헛헛했다. 혹시 이 헛헛함이 여행책자에서 추천한 맛집을 찾아가지 않아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엘 참판옛(El Xampanyet)’이라고 하는 유명한 와인집에 들어갔다. 2시 쯤이라 입구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주문을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가게 한 가운데 멍하니 서있었다. 15분 쯤 에러난 컴퓨터처럼 작동을 하지 않으니 서빙하는 직원이 내 등을 툭 치며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여기 이렇게 멍하니 있으면 4시까지 그러고 서 있어야 해. 카운터 가서 ‘까바 (스파클링 와인) 하나’ 하고 소리쳐!”

영어로 말을 했는데 내 앞에 있던 사람이 알아듣고 ‘풋’하고 웃었다. 나는 민망한 마음에 그 사람 옆을 파고들어 ‘우나 까바(Una cava)!’하고 크게 소리쳤다. 와인 한 잔이 내 앞에 따라졌다. 와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홀짝 거렸다.

“중국 사람이세요?”

옆에서 아마도 나를 향한 것이 분명한 영어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아빠 연배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이 서있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영어로 대답했다. 그는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이 있는데 입에 안 맞아서 다 먹기는 부담스러우니 혹시 음식을 나눠먹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그래, 까짓 거.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하고 승낙했다. 

▲식당에서 같이 즐겁게 대화를 나눈 ‘첸(Chan)’씨를 찰칵!

그는 (아마도) 중국계 미국인으로 골프회사의 매니저였다. 스페인으로 출장을 왔는데 며칠 정도 관광을 할 수 있어서 이 식당에 왔다고 했다. 폭우가 쏟아졌던 어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생쥐 꼴이 된 자신의 영상을 보여주며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미국에 가보고 싶은 곳, 미국 소설, 한국의 술 문화, 선생님을 바라보는 미국 학생들의 시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명함을 건네며 대화가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계산을 내가 할게요. 어차피 회사 카드니까.”

‘오, 대박’, 하는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그래, 미국 사람이잖아.’ 나는 대화 즐거웠고 잘 먹었다고 말하며 먼저 일어났다. 그와 대화하는 사이 쉼 없이 마셨던 까바 때문인지 예상치 못하게 대접 받고 나와서 인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침부터 짓누르던 헛헛함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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