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독립을 위해 시위하는 학생들. 등 뒤에 카탈루냐 국기를 두르고 있다.

“위약금은 70만 원 정도 하겠네.”

숙소 위약금 액수를 듣고 엄마의 목소리가 약간 누그러졌다.

“그럼 며칠만 다른 도시에 있자. 시위 누그러질 때까지만.”

엄마는 당장이라도 돈을 부쳐줄 기세였다.

“투표 끝나고 다시 들어오는 게 힘들지도 몰라. 못 들어오게 할지도 모르고.”

엄마가 보낸 바르셀로나 독립시위 기사링크를 클릭했다. 성나 보이는 사람들이 한가득 시위하는 사진이 크게 나왔다. 사실 무척 평화롭게 지내고 있어서 그 모습이 더 낯설었다.

처음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아파트 곳곳에 카탈루냐 국기가 걸려 있었다. ‘democracia(민주주의)’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걸 보아 조만간 시위가 있겠구나 싶었다. 첫인상이 험악하게 다가와 나는 순식간에 겁을 집어먹었다. 엄마는 끊임없이 내게 시위 관련 기사를 보냈고 나는 내 눈보다 기사 안의 과격한 사진들에 더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투표가 있던 10월 1일, 나는 투표가 끝나는 저녁 6시까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첫 끼를 저녁 7시가 돼서야 먹었다. 스페인 와서 햄버거 너무 먹는 거 같다.

1시간을 더 웅그리고 있다가 조심스레 숙소를 나왔다.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가게 주인은 웃으면서 내게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식당 앞 테라스에는 평소대로 사람들이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거리는 평소처럼 조용했다. ‘뭐지? 너무 평화로운데?’ 하며 자아분열이 일어나는 사이 평화롭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사실, 바르셀로나는 매우 평화롭고 일상적이다. 투표가 끝난 이후 시위가 크게 있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시위는 평화로웠다. 기껏해야 자동차 운전자들이 클락센을 누르며 시위에 동조한다는 표현을 하는 정도가 그들이 내는 최고 데시벨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함께 시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 그저 등에 커다란 카탈루냐 국기를 두른 채 도시 곳곳을 걸어 다녔다. 커다란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행인들에게 위협적이지도 않고 주변에 배치된 경찰도 두세 명뿐이었다.

조용한 일상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여전히 여러 식당이 내놓은 테라스엔 많은 사람이 나와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조용히 대화했다. 공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붐볐고 관광객들은 관광명소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길거리 벤치에 앉으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렸다. 

▲10월 10일 저녁 6시, 개선문 앞에서 독립선언 발표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날 독립선언은 미뤄졌다.

시끄러운 건 내 휴대폰으로 이어진 한국뿐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로 ‘바르셀로나 독립’이 떠 있기도 했다. 이후 연락이 오는 사람마다 조심스럽게 ‘별일 없지?’하고 내 안부를 확인했다. 외국에서 뉴스를 통해 북한을 보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의 시위 가운데 서 있어보았다. 위협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믿고 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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