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연명십구관음경(延命十句觀音經)은 42자로 된 아주 짧은 경이다. 일본에서 후지산(富土山)만큼 추앙받는 고승 백은(白隱)선사의 이 경의 영험기(靈驗記)를 내가 30여 년 전 일본에 갔을 때 구입했으나 일본어를 몰라 그간 서재에 묻혀두었다. 몇 년 전 일어를 아는 사람에게 번역을 부탁했더니 책이 일본 고어로 되어있어 어렵다고 했다. 일본을 자주 왕래하는 친구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그 영험기를 현대 일본어로 풀이한 책을 구해주었다.

연명십구관음경은 다음과 같다.“관세음 나무불 여불유인 여불유연 불법승연 상락아정 조념관세음 모념관세음 염염종심기 염염불리심(觀世音 南無佛 與佛有因 與佛有緣 佛法僧緣 常樂我淨 朝念觀世音 暮念觀世音 念念從心起 念念不離心)” 이 경은 뜻을 굳이 풀이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어 그냥 다라니처럼 독송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느 불경이던 독송하는 횟수가 증가하면 그 뜻이 다르게 더 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백은선사는 이 경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영험기에 소개하고 스스로 목판 인쇄를 하여 많은 불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독송을 권하였다. 이 짧은 경이 불교의 진리 자체로서 독송하면 생사해탈하여 상락아정의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이 경이 즐겨 독송하는 아미타경과 관음경을 묶어 축약한 경으로 여겨져 애착을 느낀다.

현대일어로 된 영험기의 번역자를 찾고 있을 때 마침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게 되었다. 그분은 일제(日帝)시대 경기여고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다른 자녀가 있었지만 말년을 우리에게 의지하게 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내가 그 부담을 줄여드리려고 아이디어를 내었다. 즉 일어에 능통한 그분에게 번역을 부탁한 것이다.

번역은 장모님이 책을 읽고 구술하면 내가 받아쓰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90세의 고령이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분의 의지는 확고했고 마침내 우리는 몇 달 만에 그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번역이 끝난 후 얼마 지나 그 분은 세상을 떠나셨다.

장모님은 불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연명십구관음경으로 그분이 불교에 인연을 맺게 된 것을 더없이 기쁘게 생각한다. 그 인연공덕으로 내가 연명십구관음경을 독송하면 그분의 극락왕생도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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