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I…, but……, okay.”

잠시 눈을 감고 벤치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3초쯤 지났을까? 다시 눈을 뜨니 눈앞에 커다란 손이 춤을 청하고 있었다. 내가 어버버 거리며 난처해 하자 그가 눈썹을 씰룩이며, 표정으로 ‘뭐 어때? 그냥 춤인데?’라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내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그의 손에 끌려 나와 그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산 파우 병원 한가운데서.

바르셀로나의 첫인상은 낯섦과 두려움이었다. 2주 만에 익숙해진 마드리드를 벗어나 도착한 바르셀로나는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곧 있을 독립투표 때문에 도시 곳곳에 ‘Si’라고 적힌 플랑이 걸려 있고 카탈루냐어라는 이 지역의 고유 언어가 곳곳에 쓰여 있었다. ‘메르세’라는 축제 기간이라 도시는 평소보다 더 어수선해 보였다. 마드리드와는 말도 다르고 하필이면 이런 격동의 시기에 온 것을 바르셀로나의 기차역에서 내리는 순간 알게 되었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그러니 마드리드에서 그러했듯이 이곳과도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근거 없이 믿기로 했다.

▲산 파우 병원의 전경. 커다란 성당 같다.

건물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바르셀로나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산 파우 병원을 갔다. 옛날에는 병원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전시관으로 쓰이고 병원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20세기 초, 유명한 건축가인 도메네크가 설계한 이 병원은 환자들에게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따뜻한 색감으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졌다. 화려하게 꾸며진 병원의 전면은 멋진 성당 같았다. 메인 건물 양옆으로 작은 건물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었다. 작은 건물들도 마치 달팽이 집처럼 둥글둥글하고 알록달록했다. 건물들 가운데 작은 무대가 있었고 그 옆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무대 옆에서 사람들이 짝을 지어 춤을 추고 있었다.

▲춤추고 있는 사람들. 다들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나는 주변 건물을 빙 둘러보고는 그 사람들이 춤추는 무대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한참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잔망스럽게 허리와 발을 움직였고 나는 그를 따라 어설프게 춤을 췄다. 그는 나를 휘리릭 돌리기도 하고 내 허리를 잡고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나는 내가 그의 발을 밟진 않을까, 혹시 이것이 신종 소매치기는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비 오는 날 물웅덩이를 밟는 장난처럼 스텝을 밟는 그를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며 그와 함께 춤을 즐기기 시작했다. 음악이 끝나가자 그는 순식간에 내 허리를 잡고 나를 번쩍 들어 올려 그의 허리춤에 나를 매달고 마지막 포즈를 취했다. 음악이 끝나자 나를 다시 땅으로 내려놓았다.

음악이 끝나자 그는 내게 더 출 것인지, 쉴 것인지 물었다. 나는 살짝 머뭇거리다가 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즐거웠다고 말하고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그에게 춤을 권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벤치에 다시 앉자 옆 벤치에 있던 한 아저씨가 “굿”이라고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땡큐”하고 춤추는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왠지 낯선 이 흥분에 손이 떨렸다. 이 도시와 친해질 것이라는 그 근거 없는 믿음을 갖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낯선 바르셀로나가 조금은 친근해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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