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a butter. B.U.T.T.E.R.”
아주머니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 발음이 그렇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갸웃거리는 아주머니를 보니 초조함까지 들었다. 결국 우리는 직원을 찾았다. 정직한 콩글리시 발음으로 “버터!”라고 말하자 직원은 금방 알아채고 버터가 있는 곳을 안내했다. 아주머니는 이제 알았다는 얼굴로 버터를 가리키면서 “We call this to Mantequilla(우리는 이거 ‘만테끼야’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도와주어서 감사하다고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버터를 집어들 수 있었다.

나는 가난한 객이요, 매끼를 사먹기엔 돈이 없다. 그렇다고 굶을 수도 없으니 간단히 요리를 해먹기로 결심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숙소에서 요리를 할 수 있다. 프라이팬이나 접시, 집게 등 간단한 요리 도구도 있고 소금이나 후추, 올리브오일 같은 기초적인 재료들도 살짝 쓸 수 있다. 호텔처럼 화려한 방은 아니지만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게 에어비앤비 숙소의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

▲내가 지내는 동네의 까르푸 익스프레스. 까르푸 익스프레스는 저녁 9시까지 한다.

마드리드의 현지 물가는 싼 편이다. 옷이나 와인이 특히 저렴한 편인데 음식 재료들도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건물 사이마다 ‘까르푸 익스프레스’나 ‘Dia’ (한국의 홈플러스 같은 마트)가 있고 작은 구멍가게들도 틈틈이 보인다. 그리고 하몽이라는 스페인 전통 햄만 파는 가게들도 있고 꽤 널찍한 정육점이 번화가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특히 정육점을 가는 걸 좋아한다. 고기가 한국보다 저렴한 것도 있고 정육점 아저씨들이랑 간단한 단어지만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대체로 나는 한 끼 먹을 양(100g 정도)만 달라고 하기 때문에 고기는 1~2유로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스페인에 와서 배운 스페인어가 대체로 고기 부위다. (예를 들면 등심은 Lomo, 돼지고기 목살은 Morrillo다.) 등심으로는 원팬 스테이크를, 돼지고기 목살로는 제육볶음을 해먹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간장과 고추장, 마늘가루, 참기름이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유튜버 국가비님의 레시피를 보고 만든 원팬 스테이크, 처음치고 꽤 맛있었다.

유럽 사람들은 주식이 빵인지라 쌀을 살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쌀이 꽤 다양한 종류로 매장에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10kg을 파는 것이 아니라 6인분 정도 양으로 두 손바닥만한 크기였다. 1~2유로 정도 했다. 햇반 같은 인스턴스 밥도 판다. 1유로도 안 되는 가격인데 한 팩에 2봉이 포장되어 있다. 전자렌지만 있으면 쉽게 해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라 쌀이 급하게 먹고 싶을 때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여행지에 가면 종종 마트를 방문했다. 그 도시의 사람 사는 모습을 가볍게나마 살펴볼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하기에도 참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도움을 요청했을 때 생각보다 현지 분들이 선뜻 이곳에 필요한 삶의 지혜를 공유해줬다. 덕분에 와인도 추천받고 필요한 물건의 위치도 물어보고 새로운 단어도 배웠다. 그동안 도움을 청하는 걸 어려워했지만 이번 기회로 좋은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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