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와 함께한 마드리드 번화가의 식당

“저랑 저녁 드실래요?”

옆에 앉은 중국 여자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시티투어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아 졸면서 구경하던 사람이 대뜸 같이 밥 먹자고 하면 나라도 놀랄 것이다. 그래도 이 아담하고 여자고 동양인인 나의 제안에 두려움을 느낄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여기 식당은 양이 많아서 혼자 먹기 좀 그래서요.”

잠시 생각하더니 선뜻,

“좋아요. 어디 생각해둔 곳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오, 하느님! 드디어 제가 여기 마드리드에서 식사로 괜찮은 식당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로군요! 나는 어젯밤 검색해봤던 식당들을 보여주며 같이 메뉴를 골랐다. 우리는 같이 시티투어버스에서 내려서 식당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이름은 ‘웬디’로 영국에서 1년간 유학 생활을 하다가 보름 정도 유럽 여행을 하고 내일이면 영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5시쯤이었다. 식당은 한산했다. 5시면 스페인 기준으론 점심 끝자락이다. 마드리드의 번화가에 있는 많은 식당이 자정까지 식당을 연다. 시에스타도 잘 하지 않는다. 알아보니 현지 사람들의 저녁은 7시에서 8시에 시작한다고 한다. 밤 10시에 바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식당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빈자리로 자리를 안내해줬다. 메뉴판에는 스페인어와 영어가 같이 적혀있었다. 마드리드는 워낙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많아서 스페인어와 영어가 같이 쓰인 메뉴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현지 사람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건 아니다. (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스페인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우리는 2인용이라고 적힌 고기 메뉴를 시켰다. 한 접시에는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가 가득 담겼고 다른 접시에는 감자튀김 더미가 나왔다. (가격이 23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3만 원이다) 누가 봐도 이건 4인분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식가인 건가? 마드리드는 어느 식당에 가나 음식량이 푸짐하다. 음식 가격에 비해 양이 엄청 많아서 가격에 대한 부담보다는 남길 음식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동안 선뜻 식당에 들어가질 못했는데 이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포크와 나이프로 열심히 고기를 썰어 입에 넣으며 웬디와 중국과 한국의 대학입시, 두 나라의 술 문화, 치맥과 한류 드라마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각자의 나라로 여행 오면 서로가 1일 가이드가 되어주기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웬디는 저녁에 초대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며 그 넓고 사람 많은 솔 광장 한 쪽에서 나를 안아주었다. 스페인 여행 5일 만에 누군가로부터 포옹을 받았다. 뭔가 고맙고 따뜻해져서 행복했다.

사실 뭔가에 도망치듯 스페인행을 결정했다. 한국에서 내가 느꼈던 분노와 불안감으로부터 나는 좀 거리를 두고 싶었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 이 감정들도 어느 정도 거리감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끊임없이 외면하던 불안감은 그 존재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포옹은 따뜻하고 진심 어려서 남몰래 떨고 있던 여행 초심자를 안정시켜 주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