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저항정신 지녔던 근대 불교계, 현대 불교계에 ‘일침’

‘과거의 향수를 잊지 못해 불평하는 것처럼 보여 안타까운 불교계’

위 표현은 불교계가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에 반발하여 대규모 종교편향 규탄대회를 열었을 때 그들의 모습을 묘사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낯선 서구 문물과 가치관의 유입으로 인해 사회적 격동기였던 근대 개화기에 사회를 변화시키고 주도했던 지식인들은 대개 불교계의 인물들이었다. 또한 서구의 침략으로 위기감이 조성되었을 때 불교계는 ‘민족의식’을 강조하며 누구보다 국가의 자주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불교계는 이러한 근대화 시기의 독자적인 역할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 한국불교의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지난 8일 오전 9시부터 학술문화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학술대회는 개화기의 우리 불교 모습을 통해 현재를 반추하려는 기획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근현대 한국 불교 철학 연구의 성과와 전망’, ‘근대 일본불교의 대외진출과 한국불교’, ‘근대 불교계의 민족인식’, ‘근대 전통불교에 대한 인식과 계승’, ‘근대 한국 불교의 형이상학 수용과 진여 연기론의 역할‘이라는 총 5개의 소 주제를 발제하여 근대 한국불교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주제는 ’근대 불교계의 민족인식‘이었다. 근대화 시기에 ’민족주의‘를 누구보다 먼저 인식하고 사회 개혁에 노력했던 불교계의 모습을 통해 현재 불교계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요소를 조금이나마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와 불교가 결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외세의 침략 앞에서 국민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불교계는 외세의 침탈에 맞서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계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수용하여, 서양에 대항할 수 있는 국민적 통합을 일궈내고자 했다. 불교계는 개항기 초 개항장 근처에 소학교 설립 및 여성을 중심으로 한 실업 교육과 같은 근대교육을 추진했다. 물론 일본 교단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지만, 근대 교육을 통한 민족 위기 타계를 모색했다는 점에서는 주목 받을 만하다. 이러한 불교계의 민족주의는 점차 발전하여 한용운의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에서 세계 민족주의라는 진보된 개념을 제시한다. 이 글은 자유, 평화, 평등의 정신이 녹아 있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독립사상으로 집약되어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용운은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여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한 절대 독립을 주장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넘어 서서 세계 평화를 지향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상황에도 학문적 진보를 이루어내고, 도탄에 빠진 국민들을 구하고자 노력한 근대 불교계의 모습은 현재 불교계의 모습을 다시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근현대 한국 불교 철학 연구의 성과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이뤄진 발표는 광복이후 우리나라의 불교철학 연구 현황을 살펴봤으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불교 철학의 문제점과 전망을 제시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이중표 전남대 교수는 현재 불교철학의 가장 큰 문제가 ‘연구 인력의 부족’이라고 지적하며, 동국대를 위시한 몇몇 종립대학을 제외하면 불교를 전공하는 교수가 있는 철학과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비판했다. 더불어 불교가 우리나라 역사에 끼친 영향을 생각할 때, 정책적으로 어떤 철학보다도 많은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실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근대 일본 불교의 대외진출과 한국불교’에 대해 다룬 제 2발표의 발제자인 원영상 원광대 교수는 일본의 근대불교가 아시아주의의 논리의 확산에 따라 그 역사적 흐름을 같이 했다는 것을 밝히며, 식민지 지배에 있어 일본의 근대불교가 식민지 앞잡이의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항기 한국 불교가 이러한 일본 근대적 불교의 국내 확산 과정 속에서 갈등을 느끼고, 때로는 저항하며, 자신의 구조개혁에 시급함을 느끼며 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근현대 한국불교철학 연구의 성과와 전망’, 제 4발표에서는 현대 한국불교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동화’가 거론되었고, 그가 현대 한국불교학에서 세운 업적들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김동화는 불교학 연구의 목적을 경론의 취지를 이해함으로써, 전 불교 교리를 종합적으로 조직하고 체계적으로 인식해야함을 주장한 학자이다. 그는 후학들이 현대적으로 불교를 연구할 수 있도록 불교학 모든 분야에 토대가 되는 저술을 남겼다는 점에서 인정을 받았다.

‘근대 한국불교의 형이상학 수용과 진여연기론의 역할’ 발표에서는 불교가 칸트와 같은 서구 철학과 결합되어 철학화 되는 경향에 대해 다뤘다. 불교가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해 인식하고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으며, 진여 연기론이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지며 등장했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이번 불교학 연구회의 추계 학술대회는 위기에 처해 있는 현대 불교계가 근대 불교계의 모습을 통해 반성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뜻 깊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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