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병원부터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까지 도움의 손길을 뻗는 것을 서슴지 않았던 동문 정목스님. 되돌아보니 남을 도울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해하고 있었다고 하는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정목스님을 만나기 위해 정각사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다른 사찰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주고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지붕이 눈에 띄었다. 주로 전통적인 모습을 고수하는 사찰 건물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스님은 공양간에서 밥을 지어 대웅전으로 옮기는 보살님들과 지팡이 짚고 사찰에 들르는 노인분들이 우산을 들지 않아도 되게끔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던 스님의 말씀이 고스란히 담긴 사찰이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불교방송의 ‘차 한 잔의 선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첫 비구니 MC로 활동을 시작한 정목스님은 지금까지도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부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처음 방송에서 MC를 하게 된 계기를 묻자 “불교방송이 개국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법당이 세워지는 것과 같다”며 “수행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더 많은 길로 나아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한 길에 두 명씩도 가지 말라던 부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한 결과였다.
방송은 정목스님에게 ‘적성에 맞는 일’이기도 했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스님은 학교 축제를 위해 중강당을 빌려 직접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절에서 북을 치는 모습을 영상 등으로 쉽게 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강당에 법고를 올리고 도반 스님에게 부탁해 북을 치는 모습으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때를 떠올리며 스님은 “그저 학생들과 어울려 멋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기획이고 진행이고 연출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적성뿐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적에 길과 답이 정해져 있다면 삶의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스님은 “정해지지 않은 세상의 일들이 우리에게 더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보람찬 일임을 전했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람 키우는 일’

서울대병원의 지도법사가 됐을 때에도 정목스님은 새로운 길과 마주해야 했다. 법회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타 종교와 교대로 강당을 빌려 진행해야 했으며 불자를 위한 기도 공간도 없었다. 이에 스님은 병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해 작은 공간을 얻어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잠시나마 기도를 하며 쉬어갈 수 있게 했다.
환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은 마련됐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계속해서 마주하는 환자들의 고통이었다. 스님은 20대 후반을 환자들과 상담하며, 때때로는 영안실에서 염불을 하며 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주하기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의 아픈 모습이었다. 스님은 “내 능력으로 그들을 치료해줄 수도, 고통을 덜어줄 수도 없는 무능함을 느꼈다”며 “종교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나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불교방송이 개국을 하며 서울대병원을 떠나야 했지만 그 시절의 경험은 ‘사람을 살리는 일, 사람을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스님의 기조를 세우는 계기가 됐다. 스님은 그 이후로 사찰을 운영하면서도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기도비를 모아 치료비를 지원하는 일을 시작했다. ‘작은 사랑이 세상을 깨운다’라는 의미에서 ‘작은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석가탄신일에 한 번, 성탄절에 한 번 총 일 년에 두 번 성금을 전하며 해마다 1억 2천만 원을 기부해왔다. 스님은 IMF 때를 포함해 지금까지 한 번도 성금이 줄어든 적 없는 것에 대해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들 마음속에 꽃피고 있다는 사실을 작은사랑을 통해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공부를 왜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막연해 고뇌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다.” 정목스님은 여러 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며 “다가오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에게 공부의 기회는 무한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지원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가난한 대학생은 당연하거니와 형편이 어렵지 않은 학생 또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학금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스님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가리지 않고 성금을 보냈다.

여행하며 경험하는 더 넓은 세상

실제로 스님은 대구시청의 소개로 만난 가출청소년들이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집 안에 무기력하게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스님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지원금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넓은 세상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여행을 떠나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이 여행 가서 보내 준 영상을 보니 내가 다 행복해지는 느낌이었다”며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비추기도 했다.
정목스님은 우리대학 학생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전하며 “자신의 나이가 20대인데 마치 인생을 다 살아본 것처럼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모든 것이 완성되길 바라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욕심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경험을 소중하게 즐기면서 안목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즐거움뿐만 아니라 인생의 재산을 쌓기 위해 “문화와 예술 분야를 아낌없이 경험하고 전통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작품을 접하며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람 키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정목스님은 아직 어리고 젊은 청춘들을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바라봤다. 기부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부모였다면 그랬을 것 같다”고 청년들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을 보였다. 이러한 마음이 꾸준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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