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주 영어영문학과 교수

 17학번 새내기들에게 대학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얻고 싶은지? 물었다. 그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또 다른 것을 성취하려는 욕구.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지난한 대장정을 이제 끝내고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낭만주의자가 전자라면 대학입시의 문턱을 넘자마자 자기계발의 각오를 다지는 현실주의자가 후자였다. 거의 40여 년 전 필자와는 달리 그들은 솔직하고도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느낌과 미래를 털어놓았다. 영어가 마냥 좋아서 영어영문학과에 오게 되었지만 당분간 그냥 즐기고 싶다는 A. 미팅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보다 사랑을 하고 싶다는 B. 학점과 출석을 철저히 관리해서 일찌감치 스펙을 쌓겠다는 야무진 C. 낭만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허무주의자 D는 왜 대학에 왔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혈기와 결기로 가득 찬, 때로는 심리적 방전 상태에 빠져 무기력해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여학생이라곤 3명뿐이던 그때 내 친구 A는 과형과 열렬히 사랑에 빠졌다. 경상도 사투리가 심했던 B는 셰익스피어 교수님의 암기식 강의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우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퇴하고 말았다. 늦깎이 대학생 C는 가난 때문에 학원도 못가고 밤낮으로 영어 단어를 열심히 외더니 동시통역사가 되었다. 제법 사회운동가 티를 내던 D는 데모대란 데모대를 다 휩쓸고 다녔다.


아! 거의 40여 년이 지나 꽃잎이 비처럼 쏟아지는 동악에서 청춘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 시절 그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워진다. 그러고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풍속도는 많이 바뀌었지만, 대학생들의 소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때 나는 자유를 향한 낭만주의자도 야무진 현실주의자도 못되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캠퍼스 언저리를 떠돌던 나는 현실감 없게도 자유분방한 여성지식인을 꿈꾸는 몽상가였다. 인생은 아이러니라고 누가 말했던가? 회의주의적 몽상가였던 내가 이제
강단에 서서 목에 힘주고 새내기들에게 대학 생활의 팁을 일장연설하고 있으니 말이다.


난 오늘도 새내기들에게 일러준다. “여러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세요. 그리고 책을 읽으세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의 방’을 만드세요. 하루에 10분이라도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내면의 방에 머무는 시간을 가지세요. 자신의 느낌, 생각, 소망에 집중하세요. 타인의 소망이 아닌 자신의 소망이 무엇인지 지켜보세요. 그리고 기록하세요. 자신을 소중히하는 놀라운 방법이랍니다.” 한 사람이라도 공감하기를 바라며 그렇게 말해준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