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2년,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본의 흔적 … 청산인가 유지인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침략은 단순히 우리나라 영토에 대한 침략과 수탈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무력을 앞세우면서도 그들은 식민사상 주입을 통해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우리를 지배하려 했다. 특히 문화통치기인 1919년부터 1931년까지 많은 일본식 건축물이 유입됐고, 곳곳의 지명이 일본식 표현으로 변경됐다.

윤중로에 남겨진 일본의 벚나무

벚꽃이 피는 4월, 사람들은 흔히 여의도 윤중로를 우리나라 대표 벚꽃 명소로 꼽는다. 약 1600여 개의 왕벚나무가 심어진 이곳은 이맘때가 되면 도로 양편에 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이 시기에 윤중로는 데이트 하는 연인들과 봄나들이를 나온 가족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봄을 연상시키는 윤중로는 우리식 표현이 아니다. 정식명칭은 여의서로다. 윤중제[輪中堤]로부터 유래된 이 지명은 ‘윤중’을 의미하는 한자표기가 일본어로 ‘와주테이’라고 발음되고, 와주테이가 제방을 뜻하는 일본식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영등포 구청에서 주최하는 벚꽃 축제는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라고 불린다.

현재 한류를 필두로 상권이 조성된 명동은 일본인들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일대는 구한말 일본인들의 상업지역이었다.

조선 시대에 명동은 명례동, 명례방 등으로 불렸지만 일제시대에 ‘명치정’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명치정은 일왕 ‘메이지’를 의미하지만, 해방 후 이를 단순히 ‘명동’이라고 변경했다.

원서동과 원남동도 일본식 표현이다. 일본은 조선왕조의 권위를 추락시키기 위해 창경궁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이곳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사용하며 창경원이라고 불렀다. 이 시기 창경원 남쪽에 있는 동을 원남동, 서쪽의 동을 원서동으로 부른 것이 현재 지명의 유래다.

신사동은 지명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일각에서는 기존에 모래밭을 의미하던 ‘사평리’가 일제시대에 이르러 ‘일제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뜻하는 ‘신사동’으로 변경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사동 주민센터 측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새로운 사람이 모여 만들었다 라는 의미다. 강남이 개발되면서 윗지방 사람들이 내려와서 거주한 마을이다”고 말했다. 한편, 신사동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인사동은 1914년 일제의 대대적 행정구역 개편과정에서 지어진 지명이다.

광복 후, 우리나라는 대대적인 일본식 동명 정리사업을 통해 많은 일본식 명칭을 개명했다. 그러나 단순히 일본식 지명 표현인 정(町)을 동(洞)으로, 통(通)을 로(路)로, 정목(丁目)을 가(街)로 변경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본래 의미를 변형한 것이 아니라 단위 명칭만 변경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청계천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일제가 만든 관수정은 현재 관수동이라는 명칭 그대로 남아있다.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난 적산가옥
 
현재 용산구 원효로 1가에 위치한 롯데 알루미늄 기공 사업본부 서울사무소와 롯데햄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이다. ‘적이 만든 집’을 의미하는 적산가옥은 일제의 잔재이므로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현재 대부분 변형된 형태로 남아있거나 없어졌다. 서울역 바로 뒤편에 있던 적산가옥 거리도 KTX 신역사를 지으면서 대부분 정리됐다.

하지만 적산가옥을 당장 없애야 한다는 주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개조해 수익을 창출하자는 의견도 있다. 아픈 역사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로써 새롭게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실제로 일제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가옥을 보존하면서 현대 문화에 맞게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서울시 후암동에 있는 한 적산가옥은 카페와 주점으로 변형 후 운영되고 있다. 하얗게 칠한 외관을 보면 현대식 건물로 보이지만 가파른 지붕에 얹힌 붉은 기와, 나무로 구성된 틀과 낡은 벽면이 특징인 내부가 적산가옥임을 알려준다.

곳곳에 있는 다다미방은 일본 전통 가정집의 모습을 고스란히 풍긴다. 카페와 주점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주거하던 공간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운영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우리대학 역사교육학과 한철호 교수는 현재 적산가옥의 다양한 쓰임새와 관련해 “일본은 1868년부터 1912년 사이 근대적 건축물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나고야에 커다란 부지를 확보해, 건축물을 해체 후 그곳에 다시 조립해 두었다”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본식 건축물을 한데 모아 우리가 잊지 않고 되새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도 역사를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청산해야 한다 vs 유지해야 한다

우리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그렇다면 우리대학 학생들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제 흔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중로, 명동, 신사동, 관수동 네 지명이 일본식 표현임을 모두 알고 있던 학생은 8.1%, 어느 지명도 일본식 표현임을 알지 못했다는 학생은 50%로 집계됐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할 것인지, 그대로 유지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는 두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한 학생들의 의견에는 “반드시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일제의 잔재가 우리 것처럼 인식되는 생각 자체를 모두 뿌리 뽑아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치욕적인 역사를 당연시 생각하게 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 등이 있었다.

반면에 유지해야 한다는 학생들은 “유지해야 한다. 일제가 우리를 잔혹하게 탄압했다는 증거가 명확히 남을 것이기 때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유지해야만 한다”며 교훈으로 삼아 잊지 말아야 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찬성, 반대를 떠나 “이미 고착화돼 청산할 시 일상에 지장이 생긴다면 유지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학생도 있었다. 실제로 일본식 지명을 바꾸자는 의견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경우도 있다. 명동과 신사동의 경우에는 지명이 지니고 있는 상업적 가치 때문에 쉽게 명칭을 변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역사교육과 한철우 교수.

진정한 의미의 청산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일본식 지명과 적산가옥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현재 사용 중인 일본식 지명에 대해서는 “일본에 의해 왜곡된 이름인데, 청산을 외치면서도 우리 생활 속에서 그 잔재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일본식 지명의 개명을 주장했다.

반면, 적산가옥을 비롯한 일본식 건축물에 대해서는 “일제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에는 반대한다”며 “역사성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이것을 적당한 장소에 옮겨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제 잔재를 향한 무조건적이고 극단적인 태도는 배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잔존하는 일본식 지명과 건축물을 청산해야 한다, 유지해야한다라는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정신적인 청산이다. 이는 개인만의 청산이 아닌 모두의 청산을 의미한다.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은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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