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화 명예교수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가끔 집사람의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곤 했다. 신기한 것은 그다음 날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났다. 예로서 처가에서 돈을 보내오는 등. 장학금을 받아서 기본생활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돈이 더 필요하지 않은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로는 집사람의 꿈에 할머니가 사라졌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의식하건 안 하건 우리는 항상 조상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손녀가 외국에 있으니 할머니가 항상 마음에 걸려 꿈에 나타나셨으리라. 그러나 귀국하여 가족들의품에 안기게 되니 마음이 놓여 꿈에서 사라지셨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총체적으로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이다. 만약 이 가르침에 절실히 눈뜨지 않는다면 인생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출구를 찾을 생각도 못 하는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 되리라.
진정한 불자를 가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바로 “일체개고(一切皆苦)”에 대한 철저한 인식일 거로 생각한다. 만약 어떤 자비로운 존재가 항상 우리를 보살피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인생관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까? 어떠한 상황에 있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인연 따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힘들었던 유학 시절에 집사람의 꿈에 나타났던 할머니를 무한대로 확대하면 어떤 존재가 될까?
능엄경에 모든 부처님은 중생을 마치 부모가 자식을 그리워하듯 항상 생각하신다고 설했다. 만약 중생이 부처님을 생각하면 마치 그림자가 모습을 따르듯이 부처님과 중생은 서로 떠나지 않는다고 설했다. 관음경에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운 눈으로 중생을 보살피니 이를 기억하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무한한 복덕을 이룬다고 설했다.
우리는 모두 참으로 위태롭고 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사바세계에서 어떻게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항상 한없이 자비로운 불보살의 눈길 아래 산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이 하나의 큰 꿈이고 그 꿈에서 깨어나라고 부처님은 가르치신다. 역경은 부처님을 만날 좋은 기회가 된다. 집사람은 고달픈 외국생활의 꿈속에서 할머니를 만났고 늘 좋은 일이 뒤 따랐다. 이 풍진세상에서 항상 부처님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끝없는 고통의 바다에서 꿈을 깨는 더없이 좋은 일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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