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재훈(북한학12)

 남북의 국력은 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게 되었을까?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에 따르면, 국력은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를 항상 답습한 북한과 달리, 과거를 쇄신한 한국은 발전적일 수 있었다. 무슨 말일까?
 올해 초 남북의 가장 큰 뉴스라면, 한국의 탄핵, 북한의 김정남 암살을 들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남북에서 공히 누군가가 제거되었다. 대통령 박근혜는 정치적으로 제거되었고, 김정남은 실제로 제거되었다. 두 사건은 아무 관계가 없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사건은, 남북 각각이 과거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정은은 김일성이 존재조차 몰랐던 백두혈통의 사생아다. 이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백두혈통의 적자인 김정남의 암살을 지시했다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이 ‘과거를 휘어잡는’ 일, 이른바 ‘영광스러운’ (사회주의)혁명의 권리를 독점하는 일이다. 이는 김일성과 김정일도 똑같이 했던 일이며, 수령과 지배층은 영광스러운 과거를 미래세대에게 강요했다. 북한의 신세대는 과거세대의 경험을 그대로 답습해야 했다. 미래를 박탈당한 것이다.
 한국은 물론, 전혀 다르다. 한국 시민들은 저항을 통해 항일투쟁이나 전쟁의 과거를 넘어, 자기 힘으로 일구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다. 북한의 경우 김정은이 백두혈통 혁명의 과거를 전유하기 위해, 김정남마저 제거했다. 한국의 경우 민중이, 기득권 중심의 부패하고 무능한 과거를 떨쳐버리기 위해, 대통령마저 제거했다.
지금 한국은 언젠가는 또 재해석될,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나가는 기로에 섰다고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과거로 쫓아내고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울지에 대한 고민이다. 정당들도 개헌을 놓고 다음 장을 어떻게 일구어갈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4.19를 5.16이 덮어버렸듯 과거가 미래를 집어삼켰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과거로 남기고 무엇을 새로이 추구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지켜보아야 한다. 그것이 과거세대가 아닌 우리 세대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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