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비 서울연합지부 프로젝트 총괄 담당 곽지민(세종대) 씨

좁은 2층 사무실, 평화나비네트워크(이하 평화나비)는 그 안에서 날갯짓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평화나비, 서울연합지부 프로젝트 총괄 담당 곽지민(세종대) 씨를 만났다.

‘대학생다운’ 평화나비

곽지민 씨가 대학생 동아리인 평화나비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 때부터 수요집회에 참석해 온 곽 씨는 자연스럽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평화나비에 대해 알게 됐다.
집회를 주관하거나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의 말동무가 되는 등, 평화나비는 곽 씨의 눈에 가장 ‘대학생다운’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에 곽 씨는 평화나비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자 결심했다.
재작년 처음 평화나비에 들어온 곽 씨는 현재 여러 프로젝트를 맡고 있으며 홍보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전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네트워크 형식의 동아리, 평화나비는 서울 내에도 여러 대학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전국 지부의 총인원은 400여 명이다.

후원받기 위해 ‘발품 파는’ 대학생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해결을 위한 대학생단체는 평화나비가 처음이다 보니 큰 행사를 기획하거나 실행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다. 특히 부족한 재정은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도 부담이 되고 있다.
곽 씨는 “시민단체와 서울시의 후원으로 기획을 이어가고 있다”며 “직접 프로젝트 기획서를 들고 후원을 받기 위해 발품을 판다”고 어려움을 밝혔다. 그마저도 보수단체에는 후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서 찾아갈 수 있는 곳도 한정적이다.
곽지민 씨에게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는 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연로하신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눔의 집을 방문하던 곽 씨에게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들의 빈자리는 그 무엇보다 컸다.
그런 할머니들이 “저희가 도움이 되나요?”라는 장난스러운 물음에 “위안부 문제 때문에 26년 동안 한 번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 평화나비 덕분에 조금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한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누군가의 계기가 됐으면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할머니들의 든든한 말동무가 되는 것 이외에도 많았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곽 씨는 재작년 12월 28일에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당시 한·일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식의 여론이 조성됐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가 빠진 채 진행된 합의에 의문을 가진 평화나비 대학생들은 농성을 시작했다. 영하 18도의 추위에도 농성을 시작한 대학생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농성 덕분에 사람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활동주체가 정대협과 평화나비, 여성단체뿐이었는데 노동계나 농민계, 시민단체 등으로 펴졌던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곽 씨의 얼굴엔 뿌듯함이 가득했다.

‘희생’아닌 ‘이어받는 것’

곽 씨처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대학생활을 할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대학 내 서명운동에 참여하거나 여성인권 박물관에 들러보는 등, 우리 주변에는 대학생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이 있다.
 곽 씨는 “관심을 가지고 위안부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며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문제 해결의 주체가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대학생이 앞장서야 하는 이유를 전했다.
“우리는 결코 할머니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학생으로서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를 이어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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