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선과 평화의 상징, 조선통신사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국서 전달을 위해 도쿄로 향하고 있는 조선통신사

2016년 12월 13일, 부산 국제 여객 터미널이 30여 명의 대학생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조선일보사와 외교부(주일 한국 대사관)가 주최하는 대학생 '新 조선 통신사'들이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1811년 마지막 조선 통신사가 떠난 지 약 200년 만의 일이다.

조선 통신사는 조선 시대에 국왕의 명의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단이다. 쉽게 말해 양국 평화의 상징인데 통신사가 한 번 다녀가면 일본 내에 조선 붐이 일고 유행이 바뀌기도 했다니 어찌 보면 한류의 원조 격이기도 하다.

쓰시마 이즈하라 시내에서는 당시 통신사의 행렬을 묘사한 벽화가, 도모노우라의 후쿠젠지(福禪寺)에는 조선 통신사가 이름 짓고 글씨를 써준 현판이, 교토 상국사에서는 통신사가 남긴 글씨와 그림들이 '新 조선 통신사'를 맞았다. 박물관에는 통신사가 먹었던 음식 하나하나까지 미니어처로 전시돼있었고, 지나갔던 거리는 지금까지 정비하지 않고 비석을 세우며 기념하는 등 잘 보존돼 있었다. 배로 약 한 시간을 가자 대마도가 아니라 쓰시마로 불리는 한 섬에 도착했다. 일본에 도착한 조선 통신사가 첫 발걸음을 내디뎠을 곳이다. 선조들은 이곳에서부터 도쿄까지 왕복 1년의 일정을 수행했다.
막부(일본의 무사정권을 일컫는 말)의 1년 치 예산을 사용해가며 대접했을 만큼 조선 통신사는 일본인들에게 환영받는 존재였다. 그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선조들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곳마다 유물과 유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간 매체를 통해 접했던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달라진 순간들이었다. 동시에 유물과 유적 보존을 소홀히 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배워야 할 점이라는 생각을 하며 교류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조선 통신사의 유물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준비 중이다. 이르면 오는 9월에 결론이 나는데, 평화사절단인 조선 통신사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 이를 보존하고자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이렇듯 역사를 공유하는 양국은 왜 지금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만 할까. 서로 양보하고 올바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며 대등한 입장을 가질 순 없는 것일까. 과거 백제의 영향 때문인지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선 통신사가 미개한 일본인에게 조선의 신문물을 전파해줬다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도 일본으로부터 고구마와 고추, 대포 등을 전해 받았다.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줬던 히로시마 원폭 사건. 상당수의 사람이 자업자득,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위령비가 세워져 있을 만큼 엄청난 수의 한국인도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우리나라와 일본은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시즈오카에서 일본인 대학생들과 교류해보니 무척이나 공통점이 많았다. 그들은 한국과 일본이 친구와 같은 동등한 입장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민족에 의해 쓰이고 해석된 역사가 아니라 본질적이고 실체적인 개인과 만난 의미 있는 날이었다.

이번 탐방을 통해 양국 간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며 교육을 통한 변화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게 됐다. 무의미하게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장소들에 점을 찍었고, 그 점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과에 만남을 통해 연결의 끈이 생겼다.

광복으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시절의 일들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상처로 남아, 끊임없이 덧나고 있다. 매듭지어지지 않은 여러 문제는 혐한테러와 반일시위로 이어져 우리를 괴롭고 혼란스럽게만 한다. 양국이 역사를 객관적이고 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 그것만이 한일 관계 개선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과거와 달라질 현재를, 현재보다 의미 있는 미래를 기대해본다.

▲ 조선통신사가 쓴 현판이 걸린 도모노우라의 후쿠젠지. 바다 건너 절경을 감상하기 위해선 자세를 낮춰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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