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중심지였던 충무로, 문화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나다

“문화는 정신적인 개념이다. 문화예술이란 거리에서부터 보고 배우는 것이다.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길거리에서 문화예술의 분위기가 감돌아야 한다. 시민들은 큰 긍지를 느끼게 되고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삶의 품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정재형 교수

한국판 할리우드 충무로

 “충무로의 블루칩, 충무로가 사랑한 스타, 충무로의 샛별…”
성공한 영화인에게는 늘 ‘충무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한때 충무로가 영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충무로는 다른 영화관보다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대한극장을 제외하고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때의 추억만이 이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해방 전, 본정통으로 불리던 충무로는 일본 상인들이 오가며 상업지역으로 기능했던 공간이었다. 이 명칭은 해방 후에야 비로소 개정된다. 충무공 이순신의 생가터가 이 근방에 위치했기에 유명한 장수의 이름을 따 일제의 기운을 억누른다는 의미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번성한 상업지역이었던 충무로에는 해방이후 극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실제로 당시 국내 십여 개 뿐이었던 상영관 중 다섯 개가 충무로 일대에 위치했다.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대한극장이 충무로의 랜드마크였다.
극장이 세워지자 스태프와 작가, 감독, 배우들도 몰려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영화사들이 들어섰다. 주변에 있던 다방은 영화인들의 회의공간이었고, 여인숙은 작가들의 업무공간이었다. 사진관은 유명 스타들의 사진, 영화 포스터 등을 촬영하는 역할을 맡았다.
배우의 꿈을 갖고 배역을 얻기 위해 시골에서부터 짐을 싸 무작정 충무로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즐길 것이 많지 않았던 가난한 시절, 영화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볼거리였다. 당시 우리대학 학생들에게도 공강 시간이면 수없이 드나들던 명소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한 극장에서 많은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기에 인기가 많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이른 시간부터 밤 늦게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 관람을 위해 건물 주위를 두 바퀴나 돌 정도로 긴 줄을 서야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대학 영화영상학과 정재형 교수는 “요즘 같이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관 시절이라 자신이 보고자 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가면 원하는 영화를 반드시 봤다. 만약 줄이 끊어져 못 봐도 두 시간 기다리면 볼 수 있었다”며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유명 배우들도 쉽게 충무로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명보극장 허은도 대표는 “신성일을 비롯한 당대 유명 배우들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마치 할리우드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충무로, 아련한 추억 속으로
 
문화의 중심지로써 활약했던 충무로는 90년대에 접어들자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뛰어들면서 영화관람뿐만 아니라 쇼핑과 식사까지 가능한 멀티플렉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들어선 현대식 영화관은 기존에 있던 오래된 극장에 비해 쾌적하고 접근성이 좋았다. 관객들에게 있어 충무로는 더 이상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멀티플렉스가 전국에 생겨났고, 강남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영화의 중심지는 충무로에서 강남으로 이동했다. 영화산업 종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충무로’라는 불변의 법칙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성공한 영화인에게 통용되던 ‘충무로’는 더 이상 현재의 충무로를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영화 관객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자 충무로 주변 상권도 과거의 모습을 잃어갔다. 영화관이 있던 자리에는 인쇄소가 생겼고, 사진관 대신 선술집이 들어섰다. 현재 충무로에서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 김 모씨는 “예전에 아버지가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배우와 지망생들 프로필 사진이나 영화 포스터 촬영을 했는데, 충무로 일대 영화산업이 쇠퇴하면서 은퇴하신 후 주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충무로는 인쇄의 중심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서울극장 관계자는 이러한 충무로의 분위기에 대해 “시대에 맞게 자연스럽게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충무로의 영광을 되찾자’라기보다 이제는 이 일대를 역사 속에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정재형 교수는 “충무로 일대를 영화 테마파크로 조성하여 관광수익도 올리고 영화의 거리로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기념사업을 할 필요가 있다”며 특색을 잃어버린 충무로를 다시 사람들이 찾고 싶은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문화

바닥으로 추락한 충무로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은 지하철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충무로역에서 운영중인 ‘오! 재미동’이라는 복합 문화공간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이곳은 다양한 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서울 영상위원회가 운영하는 공공미디어 센터이다.
하루 방문객이 250명 이상일 정도로 인기가 많은 이곳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신간 서적과 DVD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피에타’ 같은 예술 영화부터 흥행작인 ‘서울역’이나 ‘귀향’, 아이들을 위한 ‘주토피아’ 같은 애니메이션, 각종 다큐멘터리와 만화책까지 구비되어 있어 연령에 상관 없이 누구나 찾기 좋은 곳이다. 또 신진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실과 함께 28석 규모의 극장에서는 소규모 독립영화를 위주로 상영하는 등 각종 문화 시설을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영상매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영상제작에 관련한 장비를 대여해주고 제작지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청년으로 새로 쓰일 충무로의 미래

봄이 오면 아름답게 꽃피는 남산처럼 충무로도 젊은 활기로 가득할 예정이다. 우리 대학이 서울시 공모사업인 ‘서울의 중심에 청년의 열정을 붓다, 공생·공감·공유’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2019년 완공 예정인 이 사업은 남산과 충무로를 잇고 있는 우리 대학 일대를 캠퍼스 타운으로 조성한다.  
그중 지역 공생과 세대 공감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다. 영화 문화 산업을 대표하는 충무로의 특색을 살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서울영상미디어센터, 대한극장, 이해랑 예술극장 등 지역 내 자원과 연계해 청년들이 문화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멘토링 지원 매칭기회를 마련해 성공경험에 대해 교육할 예정이다.
스타의 거리였던 충무로답게 한류문화거리도 조성한다. 전통문화 컨텐츠를 스토리텔링 해 관광명소를 알리고,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문화관광 가이드를 양성해 낙후된 골목 경관의 환경을 개선한다. 이 과정에서 재능 있는 많은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해 활력 넘치는 대학가를 조성할 예정이다.
또 지금의 초동 공영주차장 자리에는 독립영화 상영관, 영화박물관과 전시관, 영화제작 전문 실내 스튜디오와 함께 다양한 촬영이 가능한 도심형 세트장이 갖춰진 ‘서울 시네마테크’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외에도 멀어졌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되돌리기 위해 서울시와 중구에서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뛰기엔 충무로가 쓰고 있던 왕관이 너무나 무거웠을지도 모른다. 양손 가득했던 트로피를 내려놓고 새로운 중구를 품에 안을 충무로.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는 충무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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