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도무지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익숙하다 여긴 일상의 삶을 돌연 가장 낯선 것으로 대면하게 되는 순간은 그러나 실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실로 알게 되는 때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경험은 유독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국가, 민족과 같이 집단 주체에 관해서도 진실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민족정체성은 그것을 둘러싼 담론과 제도와 표상의 복잡한 내연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공고해진다.

우리가 지금껏 “민족문화의 연원(淵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찬란한” 문화유산의 증거들은 대개 저절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새롭게 고안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신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요구에 의해 늘 ‘발견’되어온 어떤 것이다. ‘신라’를 둘러싼 역사적 왜곡과 이데올로기의 허위를 걷어낼 때 우리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신라’는 이미 ‘신라’가 아니다. 최근 출간된 '신라의 발견'은 현재 우리가 고수하거나 오해하기 쉬운 민족문화의 통념들에 대해 흥미로운 재해석을 보여준다. 민족문화의 성지(聖地)인 ‘신라’는 왜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고 고평되어야 했을까, 식민지기 소설들이 끊임없이 ‘신라’를 이야기하고 재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해방 이후 새로운 국민국가 건설기에 왜 ‘화랑(花郞)’의 이미지는 각광을 받았던 것일까.

이 책에 수록된 10편의 논문들은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에 답변하는 사이에, 현재 우리의 의식과 사고 속에 공고하게 자리잡은 ‘신라’라는 관념, 이미지가 허구적 상상이나 역사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일깨워준다. 그것은 어쩌면 한민족을 불멸의 민족으로 ‘기억’하는 것보다 더 우리의 사고와 인식의 지평을 풍요롭게 열어놓을 것이다.

'신라의 발견'은 문화적 상징, 설화, 교훈, 교과서, 시가, 심지어는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근대 한국문화의 각종 ‘신라’ 표상에 내재된 어떤 정치적, 사회적 권력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지적 호기심을 지닌 독자라면 충분히 일독할 만한 가치를 지닌 책이다.

이철호

한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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