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일 건축학과 교수

올봄 학생들과 함께 일본 답사를 다녀왔다. “동서양 건축 500년의 만남” 이라는 제법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일본 규슈 지역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학과 정기 해외답사였다. 기존 답사 방식과 달리 답사 대상을 정하는 일부터 숙식과 기간을 정하는 일까지 학생 개개인이 정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참여하고 배우는 ‘자기 주도형’ 답사 형식을 처음 기획하였다. 일면 무모해 보이는 답사를 기획했던 배경에는 필자가 일본 역사와 일본 건축역사를 대충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누구나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항상 학생 개개인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첨단 기술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듯하다.
출국 전 일본 중세 말 이후 역사와 건축사, 특히 일본 목조건축 특징과 세부 명칭에 대해 배웠다. 또 임란 반세기 전 들여와 일본 전국통일을 이루고 곧 조선 침략을 실행케 만든 서양 총 기술과 임란 이후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활동, 그들의 일본 근대화 기여, 개항 이후 서구 문명 도입과 관련된 건축과 도시의 변화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또 모던/포스트모던 그리고 지속 가능 건축도 배웠다. 답사는 확인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답사 전에 열심히 공부한 뒤 깊이 있는 해외답사가 되도록 노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답사 직후 발생된  대지진으로 유명한 쿠마모 토성의 온전한 모습을 본 행운도 허락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건축적이지 않은 곳에서 생겼다. 뒤돌아보니 필자의 현대 통신 기술에 대한 지나친 신뢰감 그리고 변화된 학생 교수 간 관계를 미처 깨닫지 못해 생긴 문제였던 것 같다. 
각 답사 대상 건축물 앞에 함께 모여 담당 학생과 교수의 설명을 들은 뒤 그룹 별로 관찰하고, 다시 소그룹 별로 자유롭게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문제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답사 현장에서 추가 설명하고, 관리인에게 인사한 뒤 마지막으로 건물 밖으로 나오면 학생들은 이미 모두 없어져 당황하곤 하던 일이었다. 필자는 학생들과 가까워지려고 해외 로밍을 신청하지 않은 것을 학생들이 아는 데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필자는 홀로 규슈 다니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정보사회에서 자란 신세대 학생들의 사고방식엔 무척 미숙하여 겪었던 에피소드를 통해 신세대에게는 더욱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한 시대가 필요한 기술은 스스로 만들거나 외부에서 도입하여 사용하게 되지만, 그 기술은 그 시대와 사회에 속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키게 된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많은 것을 배운 이번 답사를 생각하면서 30년 전 훈훈했던 사제지간의 정이 그리워지는 것은 단지 필자의 낡은 감상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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