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첫눈이 내리던 지난 11월 26일, 때 이른 눈발 위로 붉은 단풍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날 150만 명의 군중들이 모인 광화문 광장에는 안치환의 노래가 애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진눈개비 흩날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다 함께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낙엽이 소소히 지는 초겨울 문턱에서 새로운 재생을 염원하는 광장의 노래 소리는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조락(凋落)의 계절은 이렇게 광장의 함성과 함께 찾아왔다.
온기가 식어가는 이맘때가 되면 옷깃을 누구나 여미게 되고, 알 수 없는 쓸쓸함에 젖어든다. 하지만 나뭇잎이 떨어졌다고 그것이 곧 존재의 소멸은 아니다. 
낙엽은 찬바람에 흩날리며 부서지고, 진눈개비를 맞으며 썩어서 대지로 스며든다. 그래야만 새봄이 왔을 때 뿌리를 타고 올라 다시 나무가 되고, 가장 높은 가지에서 햇빛과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식어가는 온기에 나무들이 시들고,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순환이다. 나뭇잎은 자기해체를 통해야만 비로소 다시 나무가 될 수 있고, 숲을 건강하게 만드는 생명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
비단 낙엽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도 늙고 병들고 마침내 소멸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그 또한 낙엽과 같아서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임종을 슬퍼하는 제자들을 향해 혜능선사는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 했다. 소소히 떨어진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늙음과 죽음도 떨어진 나뭇잎처럼 다시 대지로 돌아가는 순환의 몸짓이다. 물질적 존재를 구성했던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네 가지 자연적 요소로 환원되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다시 생명의 근원인 자연과 하나가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와 다르지 않다. 때로는 나뭇잎처럼 새싹이 돋고, 5월의 신록처럼 싱그럽게 성장하지만 때가 되면 다시 시들고, 찬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정한 이치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생명을 위한 순환이자 거룩한 섭리에 동참하는 생명활동이다. 
그런 순환에 동참할 때 마른 잎은 다시 살아나게 되고, 한 그루의 싱그러운 나무를 키워내며, 마침내 이 강산을 푸르게 만든다. 떨어진 낙엽은 뿌리로 돌아가 근본을 살찌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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