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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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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로 읽는 ‘주홍글자’김호성 교수의 비판적 책 읽기
   
 
 

▲ 주홍글자

지은이: 너새니얼 호손
옮긴이: 김욱동
펴낸이: 민음사

 
 

학기 중에 책을 읽는 일은 매우 어렵다. 논문을 쓰거나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서 읽는 독서는 내게 책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적이 있는 독서는 일종의 일이고, 노동이다. 참된 책읽기는 현실적 목적이 없을 때 가능해진다. 일로부터 해방돼 읽는 책은 어느 순간 쾌감을 준다. 그것이 책읽기의 즐거움이다. 지난 여름 방학에도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해준 몇 권의 책과 만났다.

먼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주홍글자 The Scarlet Letter’이다. 청교도와 불교의 다름은 있어도, 종교적 이야기라는 점이 불교도인 나의 관심을 끌었다.
딤스데일 목사는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에서 촉망받는 인재이다. 그런데 그만 한 여자와 사랑, 혹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만다. 엄연히 파계를 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는 원효(元曉, 617~686)스님의 이야기를 겹쳐놓고 읽어가게 된다.

딤스데일 목사와 원효스님 둘 다 파계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파계 이후는 사뭇 다르다. 딤스데일 목사는 그 사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점점 심화되는 양심의 가책 속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인’ 칠링워스의 추적을 받아서 병들어 죽어가다가 겨우 죽음 직전에 이르러 커밍아웃한다. 하지만 원효스님은 파계 즉시 환속(還俗)이라는 절차를 치른다. 스스로 “나는 이제 스님이 아니라 거사(居士, 남자 신자)이다”라고 말한다. 그 후, 세상의 먼지 속에서 민중들과 춤추며 염불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에게는 일체의 고뇌가 없다. 고백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보니까 원효스님과 겹쳐질 수 있는 인물은 정작 헤스터 프린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딤스데일의 죄까지 떠안으면서, 묵묵히 혼자서 돌을 맞았던 여인! 청교도 사회의 율법이 부과한 대로 주홍글자 ‘A’를 가슴에 달고서 속죄의 삶을 살아간다. 그 일환으로 민중들에 대한 봉사를 통해서 그녀의 이미지를 바꾸어 간다. 이제 사람들은 그녀의 가슴에 달린 주홍글자‘A’를 ‘Adultery(간통)’의 의미가 아니라 ‘Angel(천사)’로 해석한다. 한편으로 그녀는 청교도 사회의 율법이 지닌 허위의식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한다. 딸 펄을 지켜내는 장면에서이다.

원효스님이 파계승인 그를 억압했던 당시 귀족화된 불교계의 권력에 대항하여 그들을 풍자하고, 스스로 탈권력(脫權力)의 길을 보여준 것처럼, 헤스터 프린 역시 그러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청교도의 율법은 선과 악을 절대적으로 구분지은 뒤 악에 대한 징계를 통해서 선을 확립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 수 없었던 것은 선에 집착하는 순간 선은 곧 악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선의 폭력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는 신라의 권력화된 불교계에 대해서, 또 청교도의 율법주의에 얽매인 초기 미국의 종교화된 권력에 대해서 원효스님과 헤스터 프린은 애써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홍글자’를 읽고보니 ‘주홍글자’를 통한 작가 호손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아직도 정의에 집착함으로써 또 다른 악을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호성 교수  dgupress@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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