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기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연구원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뜬금없이 개헌논의가 제기되었다. 평소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논의는 그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으로 개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현 시국을 타개하기 위한 물타기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참 안타까운 심정이다.
개헌이란 그야말로 우리 헌정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수많은 고민과 토론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저 정치권에서 특정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치부되는 것이 헌법학자로서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개헌절차를 제128조부터 제130조까지 매우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들을 보면 일반 법률 개정에 비해 상당히 까다롭고 엄격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경성헌법국가로 분류한다. 이와 같이 헌법개정절차를 어렵게 한 취지는 그만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가치를 쉽게 바꾸지 말라고 하는 헌법제정권자들의 결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최대의 가치는 무엇인가? 당연히 모든 국민의 자유와 행복일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일 것이다. 하지만 역대 개헌은 대부분 이러한 가치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야심의 발로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발췌개헌, 사사오입 그리고 유신헌법 등이 그 예이다.
이런 개헌이 국민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는 우리 역사를 통해 이미 경험한바 있다. 지금 이른바 최순실 사건으로 우리나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파쇼였는데 오히려 샤먼으로 붕괴할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 ‘웃프다.’ 도대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수석과 총리 및 각부 장관들은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신들의 권한을 가지고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 또한 정부여당은 이를 알면서도 방치한 책임은 없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독주를 파악도 못 한 야당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렇게 정치권을 비난하면 위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 봤자 결국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우리의 책임으로 귀결될 뿐이다. 플라톤의 말대로 “정치지도자의 수준이 바로 국민의 수준인 것”이다.
강의를 하면서 요즘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하나 있다. “헌법조문 몰라도 된다. 단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선거와 투표권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 데 사용해 달라”고. 그것이 오히려 헌법 조문 하나 두 개 더 아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우리 헌법을 더 잘 구현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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