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신문=윤혜경 대학부장> ▲신해통공(辛亥通共)이란 정조 15년, 공식적으로 금난전권(禁亂廛權)을 금지시킨 조치를 말한다. 금난전권이라 함은 세금을 내는 댓가로 난전을 금지하는 권리를 시전 상인에게 준 특권이다. 조선시대, 금난전권을 가진 시전 상인들은 자신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난전을 탄압하며 독과점 체제로 점점 비대해지게 된다. 이 독과점을 해체하고 자유경쟁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만든 정조의 ‘신해통공’은 힘없는 난전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불공정 거래를 철폐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 표 ‘공정거래법’으로 비유된다.

▲도시의 재래시장도 시골의 그것과 못지않던 시절이 있었다. 장이 서는 날이면 비좁은 골목 안은 나물이며 찬거리들을 머리에 이고 온 할머니와 아주머니들로 가득 찼다. 그 작은 시장 골목에서는 단 돈 몇 백 원을 놓고 할머니들간에흥정이 벌어지곤 했다. 어른들의 이러한 흥정 과정 하나에서부터 덤이 있고 에누리가 있는 정겹고 따뜻한 재래시장의 풍경은 단순히 물건이 오고 가는 장을 넘어 ‘정’이 오가는 공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러한 재래시장들이 변화하는 생활습관과 대형마트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 96년부터 정부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재건축 융자사업, 시장규제 완화, 시설의 현대화 작업 등 많은 대책들을 발표하고 철회하기를 반복했다. 소비자의 인식 변화 없이는 법령 또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대전제 하에, 주차장과 냉동 창고 건설 등 선거철이면 등장하는 선심성 인프라 구축이 결코 문제 해결의 본질이 될 수 없다는 여론 때문이다. 그러나 재래시장을 지금과 같은 위기로 몰고 가는데 가장 큰 원인은 대형자본이 개입한 대형마트들의 난립에 있다. 정부의 규제없이 우후죽순 생겨난 대형마트들은 재래시장이나 주변 소규모 상권과의 조율이나 배려 없이 상생과 공존의 개념이 전무한 상도덕을 보여줬다. 수많은 대형 마트들은 이제는 유통 독점을 넘어서 제조업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 낮은 가격을 무기로 대형마트를 채워나가는 PB상품의 등장은 이제는 대형 자본이 쌀, 휴지, 우유 등 생활에 밀접한 제조업까지도 독점을 형성하겠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형마트들은 고가의 예약주문 상품 준비로 정신이 없고, 썰렁한 우리네 재래시장은 추석대목이란 말을 잊은 지 오래다. 힘없는 난전들을 위해 조선시대에도 시전의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들이 마련됐었다. 대형 자본, 대기업들에게 특권 아닌 특권을 쥐어주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들은 분명 역행하고 있다. 서민 경제를 돌보는 일은 추석민심을 살핀다는 명목 하에 근처 재래시장을 돌아보는 일회성 순회가 아닌, 공정거래법을 준수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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