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봉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지난 10월 9일은 570돌 한글날이었다. 여기저기에서 강연 요청이 왔고, 강의를 위해 이동하는 차 속에서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 한글은 무엇일까?’ 물론 단순하게는 한글 역시 지구상 200여 개의 문자처럼 우리말을 적는 기호체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말 화자들은 누구나 쉽게 한글을 쓸 수 있고, 또 어렵지 않게 배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다른 언어에서는 이렇게 논리적이면서도 정연한 체계의 문자를 찾기 어렵다. 우수하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한글의 편리함이나 기호체계로서의 가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지낸다. 눈을 외부로 돌려보면, 표기 수단인 문자를 가지지 못해 언어 자체가 사라져 버렸거나 사라질 운명에 놓인 언어가 적지 않다. 그 언어를 사용했던 이들에게는 개발로 인해 고향이 사라진 것보다 더 큰 불편함과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또한 쓰고 싶어도 글자 배우기가 어려워 말은 하되 그것을 글로 남기지 못해서 받는 불편함과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겪어본 이들만이 그 절실함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1446년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선조들이 어떠한 언어생활을 해 왔고, 얼마나 큰 불편을 겪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글 창제 후 오늘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한글은 우리 민족 모두를 이롭게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는 세종대왕이 애초부터 백성을 각별히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세종은 우리 글자를 만들어서 많은 이들의 삶을 밝혀 주었고, 이후에도 풍요롭고 이로운 삶을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이것이 곧 많은 이들에게 이익이 되고 삶을 따뜻하게 하는 성정의 바탕이 될 것으로 본다.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한 적이 있었던가?’ 마침 한글날을 맞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런 경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불교의 가르침이 있다. ‘요익중생(饒益衆生)’이다. 말의 영역은 넓고 크지만, 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실천하고, 궁행(躬行)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규모의 크고 작음이나 역량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뜻을 바르게 펴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오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한글날이었다. 멀리는 단군의 홍익인간에 닿아 있고, 신라 때 충담(忠談) 스님이 노래했다는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처럼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할 일을 다 하면 나라 안 모두가 편안해진다는 사상 말이다. 요체는 안민(安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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