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우 아마추어 산악인/인도철학과 09졸

작년 4월 후지산 단독등반 중 길을 잃는 조난사고를 당했다. 정상등정의 기쁨에 도취되어 하산을 소홀히 한 나머지 등반로를 이탈한 것이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사람의 흔적이라곤 전혀 없는 음습한 숲길의 연속이었다. 불안한 마음탓인지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내가 묻힐 무덤을 찾아가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나절 가량 헤맸을까? 무릎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가기 어려웠고 식량과 물도 바닥났다. 깊은 산속에 홀로 고립되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발버둥 쳐야 했다. 나는 피켈로 눈을 헤치며 필사적으로 길을 찾아보았지만 얼마 못 가서 극심한 피로 누적으로 탈진하고 말았다. 정신이 혼미해졌고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타들어 가는 갈증에 콜라 생각이 간절했다. 남아있던 한 방울의 희망마저 절망의 파도에 묻혀버렸다. 그렇게 혼자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였다. 어딘가에서 트럭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소리가 났던 곳으로 몸을 굴리듯이 내려가 보니 그곳에 오래된 도로가 나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미친 사람처럼 포효했다. 정상에 오른 것보다 100배는 더 기뻤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이토록 나에게 위안을 줄줄은 몰랐다. 그것은 생존확률을 극대화해주는 징표였다. 희망이 생기자 의욕도 되살아났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해가 질 즈음에 어느 노부부의 차를 얻어 탔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때 깨달았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조난 속에서 처참하게 망가진 내 모습을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마음이 해이해지거나 긴장이 풀릴 때면 그 사진을 바라보며 심기일전하곤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말은 너무 식상하고 지겹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쉽게 간과한 대가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순간의 방심이 사람의 생명과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전하게 하산할 때에 비로소 등반이 끝나는 것처럼, 끝날 때까지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야말로 삶을 안전하게 보장해준다. 후지산은 이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주려고 호된 회초리를 들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