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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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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만으로는 부족한 당신의 아름다움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 타락한 도리안, 어쩌면 우리의 모습
▲화가가 도리안의 초상화를 그리려는 장면.

우리는 20살을 ‘봄’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20대가 지나간 사람들은 그 시절을 추억하고, 20대의 사람들은 지금이 영원하길 바란다. 사람들은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숨 쉬기도 하고, 자신의 젊음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젊음’이라는 것만이 사람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육체와 영혼이 모두 아름다웠던 한 소년의 비극을 그려낸다. 주인공인 도리안 그레이는 아름다운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앞으로 늙고 추해질 미래를 두려워한 나머지 초상화와 자신의 영혼을 맞바꾸게 된다. 이후 친구의 영향으로 쾌락주의에 빠진 그는 마약 등 범죄를 일삼는데, 타락하는 영혼과 달리 그는 20년 후에도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이다. 반면에 그의 초상화는 늙고 추악해져 간다.
 이때 자신의 영혼이 추악해져가는 모습을 보며 잘못을 깨달았다면 도리안은 행복한 말로를 맞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초상화를 그린 화가를 탓하고 그를 죽이기에 이른다. 완벽히 추악해진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도리안은 자살을 택하고 그가 죽음을 맞이함과 동시에 초상화는 본래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도리안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했다. 도리안의 삶을 비극으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도리안은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몰랐다. 다른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영혼’. 하지만 자신의 젊음에 매료된 도리안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다. 결국 도리안은 자신의 내면을 돌볼 새 없이 젊음에만 도취하여 쾌락을 부르짖었다. 그 쾌락은 도리안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고, 그를 타락시킬 뿐이었다.
 사람들은 쾌락만을 좇아 타락한 도리안을 비웃거나 그의 아둔함을 동정할 수도, 안타까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무대 위의 도리안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어느새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보다 남에게 보이는 자신을 중요시하게 됐으며 심지어 자신이 지치고 힘들 때조차 겉모습을 치장하려 애쓰게 됐다. 상처받고도 외면당한 채 방치된 내면의 마음은 곪을 수밖에 없다. 자기 내면의 곪은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빛날 수 있게 닦아주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늙는다는 것은 추악한 것이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한때가 영원하길 소망하며 미처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한 아둔함이 소년의 아름다움을 앗아간 추악함이었다. 뮤지컬의 마지막, 커튼콜에서 도리안은 노래한다. “꿈결같이 짧았던 우리의 소풍은 끝나고 항상 뜨겁던 여름 사라졌네 이제”
우리의 젊음은 소풍과도 같이 짧다. 가장 화려한 20대는 곧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윤소희 기자  elvmeldj@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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