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화 민족사 대표

'불성(佛性)’이란' '깨달을 수 있는 성품'을 뜻한다. 곧 깨달아서 부처님과 같은 인격자가 될 수 있는 자질, 바탕, 속성을 뜻한다. 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에서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한다.
대승경전 가운데 하나인 '(대승)열반경'에서는 “일체중생(사람)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불성을 갖고 있다.”고 선언했다.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나 태생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바탕을 갖고 태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수행 한다면 누구나 다 깨달을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 이것을 ‘불성사상’ 혹은 ‘여래장사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불교의 특성인 동시에 장점이다. 또 이것은 모든 사람이 동등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만 전제조건은 지각능력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선악을 구분할 줄 모르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불자들 가운데 불성을 곧 영혼과 같은 것으로 착각, 오인, 혼동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불성’이란 앞에서도 보았듯이 깨달을 수 있는 '자질' '바탕' '속성' '가능성'을 뜻함에도 불구하고, ‘불성=영혼’으로 혼동, 오인,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불성을 깨달을 수 있는 '자질' '바탕' '속성' '가능성' 등으로 설명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내 안에 있는 불성을 찾아라." 또는 "불성은 모양도 색깔도 없고,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젖지 않는다." 등 애매모호한 표현이 불성=영혼으로 오인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어떤 분들은 불성을 우리의 육체 속에 있는 어떤 하나의 무형의 실체, 즉 아트만과 같은 존재로 설명한다거나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더욱더 옳지 않다. 불성과 아트만은 그 개념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불성=영혼으로 동일시한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영혼의 세계를 알자는 것 밖에 안 된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필자는 단언하고 싶지 않지만, 설사 있다고 해도 '깨달을 수 있는 바탕'이나 '속성'을 뜻하는 불성과 영혼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에 대한 기본적 지식과 정견(正見), 정법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영혼을 불성으로 본다면 붓다를 비롯한 보리달마·육조혜능·임제의현·원효·의상 등 위대한 고승들은 고작해야 영혼의 세계를 깨달은 것에 불과하게 된다. 그런데 영혼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접신한 무속인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부처님 말씀이나 경전을 읽을 필요도 없이 그들을 찾아가서 영혼의 세계에 대하여 묻는 것이 깨달음의 첩경일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