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채연 국어국문·문예창작학과 16학번

캠퍼스 내에서 한 사람이 죽었다. 그녀가 죽은 길가엔 혈흔을 가리는 천이 씌워졌다. 다음날 캠퍼스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리고 그 길가에서 누군가는 오래도록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응시했다. 살아있는 자들은 가끔 그 옆을 지나며, 손가락으로 층층이 쌓인 흰 꽃들을 가리키거나, 중언부언처럼 어떤 말들을 흘리고 갔다. 마치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 날씨도 흐렸다. 며칠 뒤엔 비가 왔다. 매일 지나다니는 계단 옆에는 국화꽃이 하나 둘 씩 놓이고, 또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도서관 옆엔 작은 분향소가 생겼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현수막도 쓸쓸하게 걸렸다. 
  그녀의 사망 원인은 추락사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도한 음주에 의한 실족으로 인한 추락사다. 누군가는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고 한다. 술을 마신 사람이 잘못이라고. 그러나 나는 탓할 것이 많다. 마치 하나의 의례처럼 대학생들이 있는 행사에는 술이 빠지지 않는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기분을 좋게 한다. 축제를 즐길 때도, 좋은 사람들과 솔직한 취중진담을 위해서, 우리는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비판 받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음주가 일상이 되었다. 문제가 있다. 술이 먹고 싶다는 것은, 취하고 싶다는 것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술을 마시지 않고 사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말과 상통한다.
  청년 실업률 사상 최대, 늘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일상. 우리가 살기 위해 주어지는 부담은 나날이 커져만 가는데, 그로 인한 고민과 좌절은 사라질 길이 없다.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남들이 사는 세상에서 뒤떨어져 나온 것만 같은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산다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우리는 위로 받고 싶다. 
오늘도 편의점에서 한 청년이 병맥주를 사며 말한다. “오늘은 열심히 살았으니까 마셔야 한다!” 그렇다. 이렇게 술은 열심히 산 우리 청춘에게 주는 보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보상과 위로가 되는 것은 술이 아니다. 마셔도 마셔도 변하지 않는 우리 밖의 무엇에 이내 우리는 ‘만취’하고 만다. 술이 문제라고들 하는데, 술은 문제가 없다. 다만 술을 마시게 하는 무엇, 우리가 처한 현실을 비춰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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