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2019.6.3 19:23

동대신문

상단여백
HOME 문화 인터뷰
“대학시절, 청계천에서 우연히 본 곤충잡지가 인생바꿨지”

대학시절 생물학을 전공한 이해풍(생물 60졸) 교수는 곤충학 전문가다. 이 교수는 우리대학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거쳐 1970년 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지도해왔다. 또한 2002년 정년퇴임 후 생명과학과 명예교수로서 2010년 7월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하는 등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해풍 교수의 집 대문에 들어서면 잘 가꾸어진 정원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원길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안에 그가 취미로 그린 그림들로 가득하다.
“대학교 2학년부터 진로 외에도 ‘내 집’ 과 ‘그림’에 대한 꿈이 있었다. 작고 사소할지라도 내 꿈을 위해 정진한 덕분에 지금까지 온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때 품었던 사소한 꿈도 잊지 않고 이루어낸 그를 보며 그가 국내 최고의 곤충학자로서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폐허가 된 땅에서 교육자를 꿈꾸다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잖아”라며 말을 꺼낸 이해풍 교수는 해방과 6·25 피난을 겪으며 교육의 기회가 전무한 시대에 살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했다.
가난 때문에 소위 ‘돈 많이 번다’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던 대학교 2학년, 그가 꿈에 대한 목표를 만나게 된 곳은 청계천의 헌책방 거리였다. “Scientific America, National Geographic 같은 해외잡지를 보다가 곤충잡지를 우연히 접하게 됐다. 그 때부터였다. 곤충학 교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이 교수는 교수가 되기 위해선 미국에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이야 유학 갈 기회가 많지만 나 때는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당시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문교부(현재 교육부)에서 선정하는 장학생에 선발되는 방법뿐 이었지”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몰래 교내 영어강의를 도강하기도 하는 등 장학생에 선발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유별났다. 그는 “내가 그래서 영어학과 친구들이 많다” 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당시 열정만으로 유학을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미국 장학생 선발이 좌절되자 그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박사과정에 지원한 이유에 대해서 “가난했기 때문에”라고 말한 그는 이내 “사실 박사 과정에 지원하면 조교로 일하면서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 포스트닥(박사 후 과정)으로 유학도 갈 수 있었다”라며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곤충과 함께한 성공적인 유학생활

미국 국립 보건원 (NIH)에서 연구지원을 받을 정도로 그의 유학생활은 성공적이었다. 당시 우리대학 총장이었던 이선근 총장이 이례적인 일이라며 격려차 찾아 오기도 했다.
메인 주립대학교 (University of Maine)에서는 같이 연구한 교수가 그의 열정을 높이 평가해 평생 함께하길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왜 미국에 남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미국에서 배운걸 우리나라가 발전하는데 쓰고 싶었어”며 귀국한 이유를 밝혔다.
성공적인 유학생활과 함께 목표를 이룬 그만의 비결을 묻자 “매사에 최선을 다했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했기에 내 분야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며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 나는 확신한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도 활발한 기부문화 형성해야

2010년, 이해풍 교수는 공사 중이던 신공학관과 기숙사를 보며 기부를 결심했다.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발전해가는 모교의 모습을 보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다”며 계기를 밝힌 그는 1억원 이라는 목표금액 달성한 이후에도 꾸준히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기부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서는 “받은 것을 되돌려 주고 싶었다. 나는 학교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며 이유를 밝혔다.
“실험장비를 마련하고 실험실을 개선하는 등 학생들이 좋은 시설에서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다.” 이해풍 교수는 후배들을 향한 애정과 함께 기부금이 학생들의 학업환경을 개선시키는데 쓰이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또 미국대학의 기부문화를 언급하며 우리나라 역시 활발한 대학 기부문화가 형성 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요즘 청년들이 진로를 결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취업난, 경제적 상황 때문에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는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뚜렷한 목표 때문”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주저해서는 안 된다. ‘된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정년 후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목표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 그의 하루 일과는 그가 목표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게을러 질까 철저히 하루 일과를 지킨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골프와 간단한 유산소운동을 하고 식사 후 해외 학술잡지를 본다. 그리고 점심약속, 저녁엔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직도 매일, 매주, 매월 단위 계획을 미리 정리해 두는 것도 목표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하루하루가 아쉽다”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이해풍 교수. 그를 보면 어느 때보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꿈을 잃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여 공무원에 지원하거나 맹목적으로 취업하려는 현실을 되돌아 보게 된다.
우리의 진정한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해풍 명예교수는 …
이해풍 명예교수는 우리대학에서 생물학 학사·석
사·박사를 받았다. 1970년 교수로 임용돼 2002년
까지 재직했으며 1996년에는 한국곤충학회 회장
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2년 부터 현재까지 우리
대학 명예교수를 지내고 있다.

 

 

정상원 기자  zenithwon@dgu.edu

<저작권자 © 동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상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