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한 출판사에서 여림의 유고 시집을 복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 유고 시집은 2003년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었다. 여림은 1999년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여린 심성 때문에 발표 지면 하나 제대로 얻지 못하고 36세 때 세상을 등진 대학 친구였다. 그의 장례를 치르고 1년 후 백여 편에 이르는 그의 미발표 시를 문우들과 함께 찾아내어 그중 50여 편을 최하림 선생님과 내가 정리하여 유고시집으로 펴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최하림 선생님은 여림과 나의 대학 은사였다. 여림은 최하림 시인을 가슴 깊이 사모했다. 본명이 여영진이었던 그는 신춘문예로 등단하자마자 최하림 시인의 이름 끝 자를 따와 여림으로 필명을 지었다. 그러나 스승이 헌신적으로 편집한 여림의 유고 시집은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잊혀졌고 곧 절판이 되었다. 그런데 독자들이 그의 시집을 더 이상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번은 밤늦게 여림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가 여림의 유고 시집을 정리했으니 혹시 여림의 나머지 시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시를 공부한다는 그는 석사논문으로 여림의 시를 연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림의 나머지 시를 구해서 보고 싶다는 그의 청을 거절했다. 내가 보기에 시집에서 제외한 여림의 미수록 시들은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는 친구의 시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왔던 그 독자의 간절한 목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해지고 마음 한자리에서 죄의식이 싹 터 올랐다. 나는 틈날 때마다 컴퓨터 파일을 열고 여림의 미출간 시들을 읽었다. 그리고 거기서 한겨울에도 시의 영감을 얻기 위해 북한강에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곤 하던 친구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한 출판사에서 그의 유고시집을 복간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 출판사 사장 역시 젊은 날 여림의 시를 읽으며 힘든 한 시절을 건널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절판된 여림의 시집을 복간하는 선에서 그치지 말고 이번 기회에 미출간 시들을 포함한 유고 시 전집으로 내자고 그에게 제의했다. 그리고 드디어 여림의 유고 시 전집이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달에 출간되었다.
시를 쓰는 자들의 영특함과 자신의 성채를 구축하려는 그런 모습이 쓰린 만큼 아프다던 여림. 등단작 ‘실업’에서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라고 살아야 할 이유를 시에서 찾으며 시인으로 살다 떠났다. 그는 시인이 되었으니 꿈을 이루었으며 이것으로 되었다고 한 시에서 썼다.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만큼이나 짧은 생을 살다 간 그는 무명시인이었지만 시가 삶의 비상구였던 그런 그의 순수함과 간절함이 나는 이 세상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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