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 시인 언론인

 코살라국 사위성(舍衛城)에 석가모니가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왕과 백성들은 존귀한 분을 위해 등을 만들었다. 등마다 화려했다. 사위성에는 구걸로 연명하는 여인 난타가 있었다. 가난한 여인도 등을 바치고 싶었다. 여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행인에게 손을 벌렸다. 종일 구걸한 돈으로 기름을 샀다. 해질 무렵 여인은 겨우 기름 등 하나를 밝혔다.
그날 밤 석가모니께서 머무는 곳은 색색의 등불로 장엄했다. 밤이 깊어 가고 세찬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화려한 불빛들을 삼켰다. 부자의 등도, 왕의 등도 이내 꺼졌다. 오직 가난한 여인의 가난한 등만 밝게 빛났다. 빈자일등(貧者一燈). 가진 자들의 만 등보다 빈자의 등 하나가 향기로웠다. 석가모니께서 이를 기특하게 지켜봤다.
가난한 여인의 마음속에는 탐욕이 없었다. 뭇사람의 발밑에 엎드려 생명을 구걸했으니 자신은 한없이 낮췄고 타인은 한없이 높였을 것이다. 가진 자들의 등에는 욕심이 이글거렸지만 여인 난타의 등불은 오직 고마움으로 빛났을 것이다. 불가에서도 탁발은 발우(밥그릇)에 목숨을 담는 일이니 하심(下心)을 심는 최고의 수행이다.
빌어먹는 것은 욕심을 덜어내는 행위이다. 가난을 얻음이니 곧 마음을 닦는 일이다. 그래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三毒)을 없애면 산이 산으로, 물이 물로 보인다. 맑은 눈으로 쳐다보면 중생 모두가 부처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곧 불국토요 극락인 것이다. 옛 스님들은 그래서 누구든지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가난함부터 먼저 배우라(學道先須學貧)’고 가르쳤다. 성철스님도 이렇게 말했다.
“중생이란 그 살림이 부자입니다. 8만 4천석이나 되는 온갖 번뇌가 창고마다 가득가득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고마다 가득 찬 번뇌를 다 쓰지 못하고 영원토록 생사윤회를 하며 해탈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답게 도를 배우려면 8만 4천석이나 되는 번뇌의 곳집을 다 비워야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할 때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부처님 오신 날이 오고 있다. 동국대학교에도 연등이 곱게 매달려 있다. 불교정신을 받드는 우리 모교에서는 지금 무엇을 밝혀놓고 있는가. 잠시 관리를 맡은 이들이 학교의 주인인 학생을 사법당국에 고소했다고 한다. 그와 유사한, 그래서 참담한 여러 소식들이 아직도 살아서 우리를 아프게 찌르고 있다. 그렇다면 8만 4천개의 등을 달아놓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욕심덩어리 아니겠는가. 남을 높이면 진리의 동산이요, 나를 높이면 번뇌의 곳집이다. 엎드려야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다.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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