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여 뒷북 행정이나 한 발 늦은 정책을 비판할 때 이런 표현을 곧 잘 쓰고 있다. 아동폭력의 역사는 인간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할 만큼 오래지만 최근에서야 여기저기서 법석들을 떨고 있으니 이를 두고 딱 하기 좋은 말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이다.
그렇다. 아동폭력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닌데 왜들 이제야 호들갑을 떨고 있는가. 일찍이 매 맞는 아이, 학대받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오늘과 같이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받지 않았을 것을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이른 때이다’라고 생각하고 싶다.
수많은 어린이와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하기 까지 부모, 사회, 학교 그리고 국가와 관계기관 어디서도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범죄인 아동학대를 막지 못했다. 지난 해 발생한 아동학대는 11,709건으로 한 해 전보다 무려 16.8%, 5년 전보다는 2.1배나 증가했다. 문제는 이리 증가한 통계마저도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통계적으로 급증한 것은 2014년 아동학대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의 시행으로 신고가 늘어났기 때문이며 외국의 경우 신고 되지 않고 암수로만 남은 아동학대범죄가 그 5배에 이를 것이란 보고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는 우리 사회에 최소 3천 899억 원에서 최대 76조원의 사회, 경제적 비용을 부담지우고 있다고 한다.
흔히 현재 법적으로 분명하게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아동학대를 흔히 ‘훈육’ 이나 ‘가정사’ 정도로만 인식하고 학대가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표현, 사랑의 매로 포장하고 있다. 문명사회에서는 누구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용인될 수 없다. 그래서 자녀에 대한 사랑의 매라고 생각해도 엄연히 ‘작은 체벌이나 정서적 학대인 모욕도 훈육일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에는 부모에게, 학창시절에는 교사와 급우들에게, 군에서는 상관에게, 그리고 심지어 직장에서 상사에게 이런 저런 폭력에 시달려서 어쩌면 평생을 폭력을 달고 살게 되어 온 나라가 폭력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에 둔감해져서 아동학대도 쉽게 수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 때 우리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엽기적인 범죄자 강호순, 유영철, 막가파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강력범죄자들이 어린 시절,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점에서 아동학대피해는 폭력의 세대 간 전이라는 악순환을 재생산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출간된 ‘폭력의 해부’에서 아동학대와 그로 인한 폭력의 악순환에 기인한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 부모면허제도가 등장한다. 작은 원동기 하나를 타기 위해서 교육훈련과 국가 면허를 받아야 하는데,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일에는 아무런 자격조차 요구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도 최근 이 점을 중시하여 부모교육과 훈련을 강조하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