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한다. 애초 상아탑이란 세속과 담쌓고 오로지 예술에만 몰입하는 태도를 의미했지만 지금은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이나 연구실을 지칭한다. 대학은 다양한 지식과 학문을 탐구하기에 University로 불린다. Universe가 우주나 삼라만상을 의미하듯 대학 역시 수많은 책과 씨름하고, 다양한 학문계통을 아우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양권에서는 대학을 ‘큰 배움’을 의미하는 ‘大學’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면 대학은 다양한 학문을 폭넓게 접하고 크게 배우는 곳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큰 배움’일까?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은 『42장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은 큰 배움에 대해 “널리 듣고 도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도를 알기 어렵나니, 뜻을 지키고 도를 받들어 행할 때 그 도가 가장 큰 것이다.”고 했다. ‘널리 듣고 도를 사랑함(博聞愛道)’란 대학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널리 듣는 것(博聞)’은 학문을 종합하는 University와 의미가 상통하고, ‘배움의 길을 사랑함(愛道)’이란 ‘애지(愛知)’, 즉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과 상통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대학의 핵심교과 중에 하나는 철학이었다. ‘널리 듣는 것’이 다양한 지식과 접하는 것이라면, ‘배움의 길을 사랑함’이란 배운 것을 음미하여 내면화 하는 철학함(philosophein)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42장경』은 큰 배움이란 단지 ‘널리 듣고 배움의 길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 ‘뜻을 지키고 도를 받들어 행함(守志奉道)’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널리 듣고 머리로만 이해한 지식은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큰 배움이란 ‘뜻을 지키고 도를 받들어 행함’이 더해져야 한다. ‘뜻을 지킴(守志)’이란 널리 듣고 사색한 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가치관과 삶의 비전을 확립하는 것이다. 설사 많이 듣고 박학다식할지라도 주체적 사유를 통해 자신의 뜻을 세우지 못한다면 한낱 정보에 불과할 뿐이다.

큰 배움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는 ‘도를 받들어 실천함(奉道)’이다. 앎은 지식에 머물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지고, 삶의 현장에서 구현될 때 비로소 큰 배움으로 완성된다. 물론 앎과 실천의 균형은 전공과 직업의 일치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서 도덕과 정의를 배웠다면 그것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그런 정신에 입각해 실천할 때 비로소 큰 배움은 완성된다. 이런 배움이야말로 자신을 성장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힘이 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