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놀고 집에 들어왔던 것  같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버지는 거실 바닥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의 턱은 가슴에 닿고,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우는 모습에 나도 옆에 앉아 울었다. 그때까지 몰랐던 아빠의 외로움이 내 마음에 닿았다. 여태껏 그날처럼 많이 울어본 적이 없다.
내가 이날 펑펑 운 이유는 ‘인간’이기에 아버지를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처럼 ‘인간’의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다. 언어라든지(동물의 울음과는 다른), 글자라든지, 두뇌 스포츠인 바둑이라든지. 바둑은 19x19, 총 361칸에 흑과 백이 한 번씩 번갈아 두는 방식의 게임이다. 사람들은 바둑을 인간이 할 수 있는 게임 중에 가장 고차원적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지난 3월 9일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된 바둑에 알파고라는 ‘기계’가 ‘인간’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대결에 모든 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과연 기계가 인간을 상대로 바둑을 이길 수 있을까?
 대결이 펼쳐지기 전에 전문가들은(비록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바둑은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하기 때문에 ‘기계’ 따위가 계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간’의 직관이 필요한 것이라면서. ‘기계’의 계산력이 ‘인간’의 감을 이길 수 없다고. 모두의 예상이 빗나갔다. 결과는 4대1. 알파고의 압승.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 면에서 이 9단은 힘을 쓰지 못했다. 이 9단의 감으로 둔 수를 알파고의 정확한 연산이 무력화시켰다.
모든 매체나 나의 주변에서 이 9단의 패배에 정말로 아쉬워했다. 마치 본인들이 진 것 처럼. 나 역시 이 9단이 밀릴 때는 내가 밀리는 것 같았고, 이 9단이 질 때는 내가 지는 것 같았다. 그의 어깨를 따라 내 어깨 역시 처져 수업을 듣곤 했다. 왜 그럴까? 왜 나는 지금 알파고가 아닌 이세돌 9단을 응원하고 있을까? 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능력을 뛰어넘으면 안될까? 나는 완전히 이세돌 9단 편에 서 있었지만 계속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다시 나의 고등학교 때를 떠올린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의 어깨가 떨릴 때 안아주고 싶다. 지금도 못하고 있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렵겠지만, 울음을 참고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아버지께 온전히 ‘공감’하고 싶다.
내가 ‘인간’ 이세돌 9단을 응원하는 이유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그냥 ‘인간’이기에.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그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그 어떤 기계도 알파고를 응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기계의 연산능력이지만 사람의 감정을 계산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것이 알파고와 우리가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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