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는 法을 구해 어린 날 고향을 떠나 구도의 집념을 갖고 결국 불법의 원향에 상륙했다. 석가의 고뇌와 보살행의 발자취 좇아 무한의 길(道)을 걷고 걸었다. 숱한 사람들의 인연과 만남과 헤어짐을 되새김질 하면서 業을 덜거나 쌓아가며. 그리고 뱃 길 보다 더 고난에 찬 사막길을 생명과 맞바꾸며 걸어서 끝내 귀환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아시아의 사막길과 바다길을 동시에 답사한 탐험가가 되었다. 그 이후 1300여 년 지난 지금 나는 현대 문명을 이용해서 얌체처럼 유라시아를 종횡하고 있다. 
등짝이 짓무르도록 걸머지고 온 경전 두루말이들. 온몸뚱이와 마음에 담고 묻혀온 부처의 손길 마음길과 법열, 실존. 어떤 나라와 왕들이 있고, 돈 될 수 있는 어떤 자원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가 하는 비싼 정보와 고급지식들.
수행자라면 그가 무슨 발심을 하고 왜 떠났는지, 그 여정에서 어떻게, 얼마나 法에 더 가까이 갔는지가 궁금할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더 궁금한 것들이 많다. 탐험의 대선배인 그가 어떻게 용기를 내었고, 어떻게 그 상상도 못할 한계상황들을 극복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또한 그 시대에 그가 보고 걸은 유라시아 세계의 넓이와 색다른 자연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과 문화가 궁금하다.
유라시아!
우리와 핏줄도, 언어도, 하늘과 조상을 공경하는 사상과 신앙도 유사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활력 넘치고 순도 깊은 음악과 미술 등 예술적인 인연이 깊은 곳. 말, 황금, 보석, 유리, 향료, 비단, 모피 같은 값비싼 자원들이 풍부한 곳. 저 먼 인도나 서아시아, 아프리카, 심지어는 로마나 시베리아, 동유럽까지 연결시키는 해륙교통망이 실처럼 뻗은 곳.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 시대, 유일했던 그의 존재가, 그의 고양된 인식과 절절한 행위들이 고국 신라세계에,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후배 청년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다면.
신라 젊은이들의 생각과 활동무대는 좁고 답답한 반도를 훌쩍 뛰어넘어 인도나 중앙아시아 알타이 산맥으로 달리고, 돈을 벌기위해 인도양을 횡단하고, 어쩌면 지중해까지 진출하거나 무역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온갖 기술과 물건, 지혜와 예술 등을 교류하면서 신라는 성숙한 문화를 창조해가고, 사고도 자유롭고, 사회는 좀 더 역동적이면서, 불국토에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동악을 오르내리는 혜초의 후예들이 있다. 그들 앞에 놓인 유라시아는 혜초의 시대보다 모든 면에서 절박할 정도로 다가온다. 
가늘고 희미하게 잠류로 흐르던 혜초의 인연들이 솟구치는 듯한 예감이 이 새 봄, 첫 냉이순처럼 돋는다.

  “역사에도 인연은 소중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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