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앞에 사과 상자 하나가 놓여있다. 그 안에는 썩은 사과와 멀쩡한 사과가 섞여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썩은 사과들만 골라내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어떤 누군가는 단지 몇 개의 썩은 사과로 인해 상자 속 모든 사과를 버리기도 한다. 몇 개 되지 않는 썩은 사과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멀쩡한 사과들마저 썩어버리게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바로 오늘 소개할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기자들이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각본상을 동시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교회에서 일어난 아동 성추행 사건을 고발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보스턴 글로브지 ‘스포트라이트’팀의 모습을 담담하고도 인상 깊게 담아낸다.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사건은 2002년 메사추세츠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으로, ‘스포트라이트’팀은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였던 글로브지에서 비밀리에 기획ㆍ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했던 팀의 이름이기도 하다.
눈에 띄는 수많은 탐사보도 중에서도 그들이 유독 빛날 수 있던 이유는 그들의 힘겨운 싸움이 종교를 넘어 자신들의 가족,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들과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팀의 유일한 여기자 사샤의 할머니는 일주일에 몇 번씩 성당에 나갈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가톨릭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자신이 쓴 기사를 보게 될 할머니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한다. 마크러팔로가 연기한 기자 마이크 레젠데스는 영화 속에서 “나에게 가톨릭은 언젠간 돌아갈 곳이었다”며 이를 둘러싼 비리에 혼란스러워한다. 또 다른 기자 맷 캐롤 역시 가족들과 함께 성당에 다니고 있는 신자였으며, 팀장 월터는 보스턴에서 나고 자란 보스턴 토박이로서 가톨릭에 대한 고발이 마을 전체를 뒤흔들게 할 수 있음에 주저한다.
뿐만 아니다. 보스턴의 강한 지역성 역시 그들에게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교구의 비리를 파헤치는 팀장 월터는 취재를 하던 중 “마티(취재를 지시한 편집장)는 보스턴 사람이 아니니 이곳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저 실적을 올리기 위함이니 동요하지 마라”는 충고를 받는다. 유일하게 양심적으로 피해 아동들을 위해 변호 활동을 하는 변호사 개러비디안 역시 자신이 아르매니아 출신임을 밝히며 “나같은 이방인들에게 보스턴은 외로운 도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보스턴 사람들이 얼마나 그들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똘똘 뭉쳐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구독자의 50%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것만 고려해도 보스턴 글로브지가 가톨릭의 치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란 상상 이상으로 갈등되고 힘든 일이었을 터. 그럼에도 그들은 주변의 수많은 압박과 회유를 외면하고 그들의 길을 선택한다. 이윽고 아이들을 성추행한 사제들, 그리고 이 사건을 감추려는 가톨릭 교구를 끝내 고발해낸다. “사과 몇 알 썩었다고 상자 째 버릴 수는 없다”고 말하는 보스턴 사람들을, 그들의 이웃들을, 그들의 친구들을, 그리고 자신을 이겨내고 정의의 깃발을 세운다.
혹자는 영화를 보고 “언론인의 잉크는 권력에 낀 기름이 아닌 사회적 약자의 눈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와 정치 또는 마케팅 도구로 전락해버린 언론이 아닌, 그들만의 사명감과 신념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곳을 찾아야 할 때다. 드러나지는 않음에도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오늘도 절망 속에서 용기를 내는 그들에게서 희망 한 줄기를 기대해본다.                                  우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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