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

부처님이 마가다국에 계실 때의 일이다.
탁발을 나갔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젊은 남녀가 선물을 교환하는 축제의 날이었다.
모두 들떠 있던 탓에 아무도 공양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행자에게는 걸식할 때 일곱 집을 넘지 말라는 ‘칠가식(七家食)’이라는 규율이 있다.
부처님은 빈 발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마라(惡魔)가 속삭였다.
“어떻게 하루 종일 굶을 수 있는가. 규칙을 어기고 다시 마을로 들어가면 되지 않겠는가”
부처님은 이를 거부했다. 비록 배는 고프지만 양심과 규칙을 지키는 기쁨이 배부른 즐거움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노기남 신부는 우리나라 천주교 최초로 대주교가 된 분이다. 그가 언젠가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간 일이 있었다. 3등 칸 전차표를 샀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다. 2등 칸으로 갔으나 거기도 만원이었다. 할 수 없이 1등 칸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차장이 오면 모자라는 돈은 더 지불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다리던 차장이 끝내 오지 않았다. 그는 서울에서 목포로 내려 올 때는 1등 칸의 표를 사서 3등 칸에 탔다. 전날 3등 칸 표를 사서 1등 칸을 탔던데 대한 마음갚음이었다.
아니룻다라는 부처님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설법을 듣다 졸은 적이 있는데 부처님이 나무라자 앞으로는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할 것을 스스로 약속했다. 오랫동안 눈을 붙이지 않고 수행했더니 눈병이 났다.
사람들이 말렸지만 육체의 눈은 멀더라도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면서 결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그는 정말로 눈이 멀었다. 그렇지만 마음의 눈이 열려 뒷날 부처님 10대 제자 가운데 천안제일(天眼第一)로 불렸다.
이대원심 보살은 불광동에 사는 불교신자다. 어느 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배달을 시켰다. 그런데 주문하지 않은 물건이 몇 개 들어있었다. 바로 마트에 전화를 걸었더니 직원은 할 수 없다며 그냥 쓰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마트로 가서 물건을 되돌려주고 왔다. 공짜 좋아하면 점점 더 공짜를 바라게 되고 나중에는 마음속에 거리낌조차 없어질 것 같아서였다.
앞의 이야기들은 똑똑한 사람일수록 동의하기 힘든 바보 같은 이야기이다. 꼭 그럴 필요까지 있겠냐는 것이다. 딴은 그렇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런 바보열전을 들으면 왜 자꾸 부끄러워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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