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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두 영화를 만나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 ‘멋진 하루’찰나의 순간에 집중하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드라마, 멜로/로맨스 | 프랑스 | 2014.01.16 개봉
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 | 출연 레아 세이두,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멋진하루
드라마, 멜로/로맨스 | 한국 | 2008.09.25 개봉
감독 이윤기 | 출연 전도연, 하정우
 

누구나의 삶에 한 번쯤은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기막힌 절경을 보고 넋을 잃거나, 생각지 못한 곳에서 헤어진 연인을 만나 그 사람과의 추억이 삽시간에 번질 때,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 자신을 향해 상냥히 웃어줄 때, 방향을 잃고 헤매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마주할 때.
그러나 황홀한 순간은 짧고, 고운 모래마냥 손바닥에서 쉽게도 벗어나고 만다. 필사적으로 순간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보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기억에서만 또렷할 뿐이다. 얄궂게도 이러한 순간들은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곤 한다. 이에 어떤 영화들은 그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멋진 하루’는 이처럼 알아차리지도 못할 새에 삶의 커다란 방향전환을 일으키는 찰나에 집중한다.

 

무채색 소녀에서 파란 어른으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였던 아델(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은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엠마(레아 세이두)를 마주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훗날 다시 엠마를 만난 아델은 그녀야말로 자신이 찾던 사람임을 깨닫는다.
길을 걷다 우연히 누군가를 마주치고,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면 마음속에 무엇인가 보태지는 것일까, 또는 빠지는 것일까. 영화의 초반부 수업시간, 교사가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아델이 난생 처음 보는 엠마에게 사랑에 빠질 때, 그 순간은 하나의 드라마이자 이정표가 되어 아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아델은 엠마를 끝없이 갈구하고 원하게 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델에게 엠마는 자신의 빠져나간 마음 한 편을 채워줄 유일한 대상인 동시에 평범한 소녀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하나의 충만함이었다.
아델에게 엠마는 하나의 ‘파랑’이었다. 그녀의 머리색깔처럼 엠마의 파랑은 자상하고, 부드러웠고, 따뜻했다. 엠마는 아델의 스승이자 친구로, 연인으로 아델의 삶을 자신도 모르는 새에 결정짓고 만다. 훗날 엠마와 헤어지고 난 후에도 아델은 여전히 파란 옷을 입고, 푸른 바다에 떠다니며 감추던 눈물을 자신의 파란 방 안에서 터뜨린다. 엠마는 파랑을 다른 색으로 바꿨지만 여전히 아델은 푸름을 간직한다. 즉, 소녀였던 아델은 처음 엠마를 마주칠 때부터 파랑으로, 어른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아델의 마음에서 빠져나간 것은 엠마였고, 덧칠해져 지울 수 없던 것은 파랑이었다. 아델은 엠마를 잊겠지만, 또 다른 파랑을 찾아 나설 것이다. 무심코 찾아올 그 어떤 순간을 기대하면서. 

 

한 순간이 초래한 삶의 방향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순간의 마주침으로 인해 한 소녀가 어떻게 성장했는지의 과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면, ‘멋진 하루’는 ‘헤어진 연인과의 하루’라는 순간을 집중하여 관객에게 제공한다.
볕이 좋은 어느 토요일 아침, 잔뜩 부은 얼굴로 병운(하정우)이 있는 경마장을 찾은 희수(전도연)는 다짜고짜 빌려준 돈 350만원을 갚으라며 병운을 재촉한다.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희수에게 병운은 화를 낼 법도 한데 외려 능청스레 희수에게 되묻는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병운은 여윳돈이 없어 지금 돈을 갚지는 못하지만, 오늘 내로 마련할 수 있다며 희수를 안심시킨다. 당장에 350만원도 없는 남자가 경마장엔 무슨 일인지, 어떻게 돈을 갚는다는 건지 희수는 어처구니없기만 하다.
한 매체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윤기 영화들의 매력은 ‘우연찮게 벌어진 상황들로부터 어느 순간 이전과 달라진 삶의 모습을 알아차리게’하는 것이다. 전작 ‘아주 특별한 손님’이나 2011년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역시, 이 같은 순간을 담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다이라 아즈코의 원작을 각색하여 만든 ‘멋진 하루’에는 그의 영화적 매력이 정수처럼, 듬뿍 담겨있다.
병운과 헤어진 후, 희수의 삶은 엉망진창이었다. 회사를 그만두었고, 약혼자의 실직으로 결혼까지 포기해야했다. 희수에게 350만원은 그저 병운을 만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시금 병운에게 다가가기엔 그녀의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하니, 그녀는 다른 변명거리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희수는 어쩌면 무의식중에 병운과의 하루가 자신의 삶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길 희망했을 것이다. 여전히 사람 좋기만 한 병운이 우습더라도 그녀가 기댈 유일한 사람임을 그와의 하루에서 새삼 느끼며, 또 다른 어느 날 허울 좋은 핑계로 병운을 찾아갈지도 모른다.

 

잡히는 것 아닌 잡는 것

이제 희수와 아델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에게 순간이 찾아온 것만 같다. 희수에겐 350만원이 급했고, 아델은 엠마를 우연히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우연은 운명적이기 보다는 차라리 능동적이다. 결국 엠마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델 스스로였고, 병운의 하루를 따라가기로 한 건 희수였다. 손길에 이끌린 것이 아니라, 손길을 잡은 것이다.
당장은 슬플지라도, 그들의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길거리에 노랗게 붐비는 요즘이다. 가만히 길을 걷노라면 영화 같은 순간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만 같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내미는 손을 꼭 잡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성종환 기자  dks00312@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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