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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1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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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야 교수의 한국의 도시 <11> 한하천의 항구, 강경

   
▲ 강경천에서 바라본 옥려봉과 서창리
강경은 한반도에서 드물게 바다의 항구가 아닌 하천의 항구이다. 서해의 밀물이 금강(錦江)을 통해 내륙으로 역류해 들어오는 곳이다. 또한 충청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며, 한반도 내륙으로 진입하는 거점이기도 했다.
강경은 금강하류의 조수가 출입하는 갯벌로 염분을 품은 갈대밭이었다. 때문에 강경은 오래 전부터 식수가 부족해 사람이 살기 적합한 곳은 아니었다. 또한 잦은 금강의 범람으로 사람이 거주하기 적합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특히 부족한 수원으로 소화기 질환과 전염병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해운 교통의 거점

그러나 백제 때 강경은 해운교통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백제 말기 나ㆍ당연합군이 강경을 통해 부여로 침입하기도 했다. 이런 강경의 연결 기능은 고려 때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의 물자교역과 통신교역이 절실해지면서 계속됐다.
강경은 금강이 흐르는 방향을 180도 바꾸면서 논산천ㆍ강경천과 합류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고려와 조선시대 초기까지 강경은 포구와 봉화기지로 활용됐다. 특히 강경산은 금강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조선시대 한성과 호남 지역들 간의 봉수거점으로 이용됐다.
강경이 이 지역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630년대 이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육로와 해로가 성장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이 충청도 내륙으로 침입한 곳도 이곳이었다.

 

소금으로 성장한 도시

강경은 흥미롭게도 한국 소설들의 배경이 되어 왔으며, 그 소재는 소금이었다. 조선후기에 발표된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원은 돈을 벌기 위해 강경장에서 소금매매를 한다. 이후 김주영의 ‘객주’, 박범신의 ‘소금’ 등에도 강경은 한국도시의 근대화를 보여 주는 배경이 됐다.
한반도에서 신라는 809년을 전후로 이미 소금을 생산하고 보관하는 체제를 갖췄다. 바닷물에서 얻는 소금으로는 자염과 천일염(天日鹽)이 있는데, 자염은 바닷물의 염도(鹽度)를 높인 뒤에 끓여서 석출(析出)하는 소금이다.
반면 천일염은 해수를 끌어들인 뒤에 바람과 햇볕으로 수분을 점차 증발시켜서 결정시킨 소금이다. 당시 소금은 자염으로, 화염(火鹽), 전오염(煎熬鹽), 육염(陸鹽)이라 부르기도 했다.
고려는 이미 1288년(충렬왕(忠烈王) 14년)을 전후로 한반도에서의 전매를 시작했으며, 백성 중에서 염호(鹽戶)를 뽑았고 염창(鹽倉)을 조성하였다. 고려사(高麗史)는 “양광도(楊廣道)를 비롯한 여섯 도에 소금가마 616개와 염호 892호가 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에는 세력가들이 염전을 장악했으며, 이후 소금의 전매제는 철폐하였으나, 염업(鹽業)의 국영(國營)은 진행되어 국가 재정 확보의 수단이 됐다.
강경은 이 시기에 소금의 독점매매 및 유통권을 갖고 있었다. 또한 강경 상인들은 이 소금으로 조기나 새우 등을 소금에 절이는 염장(鹽藏)기술을 사용해 그 유통시장을 넓혔다. 
하지만 1907년 이후 인천 주안을 시작으로 한반도에 대규모 천일염전((天日鹽田)들이 조성됐다. 1920년대 말부터는 2억 근 이상의 천일염이 생산됐고, 한국산 소금의 주종이 천일염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 시점부터 결국 강경장은 쇠퇴하고 말았다.

 

소금에서 젓갈로

이러한 강경의 성장과 쇠퇴는 지역유통망의 구축과 와해에 의해 기인한다. 특히 강경장의 쇠퇴는 1901년부터 이미 진행됐다. 강경장은 군산항의 개항(1899년)으로 해상교통의 경쟁력을 잃었으며, 경부선(1905년), 군산선(1912년), 호남선(1914년) 개통으로 역시 육상교통의 경쟁력도 잃었다. 내륙 교통의 발달로 금강 수운이 쇠퇴하면서 강경의 시장권은 결국 위축됐다. 
실제로 군산항이 조성되면서 금강 하류 지역은 군산을 중심으로, 경부철도 개통으로 금강중류 지역은 대전을 중심으로 시장이 조성되었다. 또한 인접한 철도 교통의 중심거점으로 논산장(論山場)이 크게 성장하면서 강경장의 기능은 크게 약화되었다.
강경장은 1980년대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는 전일순 논산시장(전 논산군수)이 주도하여 논산의 딸기축제와 함께 강경의 지역복원운동의 핵심으로 1997년부터 강경젓갈축제를 강경포구 용왕제(龍王祭)와 함께 실행하였다.
특히 1930년대 성시를 이루었던 강경의 수산물 및 젓갈시장을 다시 활성화하고, 강경젓갈을 홍보해 주민 소득 증대 및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했다.
이 축제는 논산시와 ‘강경맛깔젓상인협의회’가 주관하여 매년 10월경에 강경 및 금강천변에서 열리고 있다. 이와 함께 ‘강경발효젓갈축제’의 전시관(2004년)이 금강제방에 지상 4층 규모의 유람선으로 조성됐다. 2003년에는 축제기간에 약 55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여 223억 원의 지역 경제 진흥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광야 교수  공과대학 건축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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