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거북이’가 거둔 성공

 
-  법조인의 꿈을 향했던 20년의 시간, 새로운 출발선에 서다

김상선 동문은 졸업 후 집안형편으로 사법시험을 포기해야만 했지만 꿈을 위해 계속해서 도전해 나갔다. 그는 마음이 힘든 상태일수록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처한 시련에 얽매이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꿈을 이룬 그를 만나보았다.

지난달 13일 발표된 제57회 2014년 사법시험합격자 명단 중 돋보이는 합격자가 있다. 42세라는 나이로 올해 최고령 사법시험 합격증을 거머쥔 우리대학 법학과 김상선 동문(법학02졸)의 이야기이다. 가정 형편상 고시공부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때도 있었지만 법조인으로서의 꿈은 그를 다시 도전하게 했고, 긴 인고의 노력 끝에 ‘사시 합격’이라는 쾌거를 거둘 수 있었다.
많은 굴곡을 그려왔던 그의 고시 인생은 상상할 수 없는 압박감과 끊임없는 인내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무엇이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그의 합격을 가능하게 했을까? 긴 터널을 지나 이제 진정한 법조인의 길에 선 그를 만나봤다.

 

검사의 꿈을 접게된 험난했던 시절

우리대학 법학과에 입학한 김상선 동문은 학창시절 동안 검사를 꿈꿔왔다. 그는 “법조계 내에서 검사는 가장 능동적인 직업이고 정의를 실현하기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라며 꿈을 갖게 된 동기를 밝혔다. 김 동문은 학교 공부 대신 뜻을 가진 고시공부에 더 큰 열정을 쏟으며 꿈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졸업 후 2004년, 아버지가 위암으로 인해 돌연 쓰러지시면서 간병을 해야만 했다. 그는 고시공부를 내려두고 5개월 동안 아버지를 간병했지만 결국 이듬해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집안의 기둥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신적, 물질적으로 힘들어진 그는 어쩔 수없이 고시 공부를 포기했다. 그리고는 3년 6개월가량 법률 사무소의 사무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김 동문은 “일을 하면 할수록 전에 했던 고시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그는 학창시절 꿈꾸던 검사가 아닌 변호사로서의 새로운 꿈을 가지고 2009년 다시 연필을 잡았다.

 

다시 시작한 공부 그리고 합격

오랜 기간 사법시험을 준비한 그에게 합격 소식은 뜻밖이었다. 4일 동안 치러지는 2차 시험 중 3일째 시험을 완전히 망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차피 내년에도 2차 시험이 있으니 자포자기 심정으로 시험을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는 “시험을 볼 때 긴장감 때문에 자기가 실수한 부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위축되지 말고 끝까지 열심히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실제로 그는 2011년, 2012년 연속해서 1점 차로 1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잦은 실수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어 “본인만의 학습법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라며 끊어 읽기라는 학습법을 활용하여 빠른 시간 내에 문장을 꼼꼼히 살피는 연습을 했다. 이를 통해 실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고 성적 향상을 이뤄냈다고 한다.
또한 그는 고시 공부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길게 준비해야 하는 고시 특성상 많은 유혹과 좌절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큰 힘이 되어준 선광철 동문(법학02졸)과 함께
나의 가장 큰 버팀목들

“합격할 때의 심정이요? 합격을 기뻐하기 전에 그냥 놀라고 멍하더라고요. 합격 소식을 전해드리자 어머니는 저에게 고맙다고 하셨어요. 제가 고맙다고 해야 되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후 혼자서 가정을 부양해왔다. 김 동문은 그런 어머니에게 항상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가 힘들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늘 응원해주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어머니뿐 만이 아니었다.
김상선 동문에게 형은 긴 고시 공부를 이겨내게 해준 멘토였다. 그의 형 김희선 씨 또한 재작년 42세의 나이로 5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 덕택에 김 동문은 형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형은 시험 보는 요령을 가르쳐줬고 암기노트를 전수해주기도 했다.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두 형제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서로의 학비를 보태주기도 했다.
30대가 넘어 다시 연필을 잡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공부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었던 그에게 큰 도움을 줬었던 사람은 그의 후배 선광철(법학02졸) 동문이었다. 선광철 동문은 그에게 책과 정리 노트를 소개해주면서 힘 닿는 데까지 도왔고, 그런 후배의 응원에 힘입어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변호사로서의 삶을 말하다

그는 변호사로서 공감과 객관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록 패소할지라도 의뢰인을 상대로 끝까지 책임을 다하면서 소통하는 공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공감이 지나쳐 객관적인 판단보다 한쪽으로 치우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공감의 태도를 취하는 중용의 자세를 강조했다.
덧붙여 김 동문은 “사법시험이 존치해야 저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2021년을 기점으로 폐지될 예정인 사법시험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나와야만 법조인으로서의 자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무엇보다도 법에 대한 본인의 실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김상선 동문은 이제 막 변호사로서 새로운 발돋움을 내디뎠다. 20년 가량의 긴 시간 동안 그는 법조인이라는 꿈을 위해 노력했고 그 꿈을 이룬 지금,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는 앞으로 변호사가 되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의뢰인과 상담하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한 형편상 사무소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법률 상담을 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노력과 성공의 결실은 법조계를 준비하는 수많은 청년들의 귀감이 되었다. 앞으로의 행보도 누군가의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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