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하나로,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사람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 소절만 들어도 엉덩이를 실룩대며 설거지하는 애니메이션 ‘아따맘마’ 주인공 한애숙 여사의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목소리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우리대학 출신 성우 이미자(사회교육 81졸)동문이다. DUBS 아나운서 출신이기도 한 그녀는 어느새 목소리 연기자가 되어 만화 캐릭터 뒤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톰 소여의 모험(톰 소여役), 도라에몽(진구役), 다!다!다!(민우주役) 등 유명한 애니메이션에서 남자 주인공 목소리를 연기한 이미자 동문. 얼마 전에는 오는 12월 개봉하는 뽀로로 극장판의 ‘크롱’ 목소리 더빙 작업을 마쳤다.
“요즘 대표작은 뽀로로가 됐어요” 스스로도 인정한 대표작은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밥 먹어, 크롱~” 한 마디로 “제발 밥 좀 먹으라”는 엄마의 애원에도 꿈쩍 않던 아이들이 숟가락을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울음 소리 외에 대사 하나 없다. 이런 아기 공룡을 어떻게 연기하는 것일까. “심지어 작품을 그리는 사람조차도 궁금해 해요. 저는 그저 상상력을 동원할 뿐이죠.”

캠퍼스를 종횡무진 했던 대학 생활

풍부한 상상력을 위한 특별한 훈련법이 있을까. 전시나 작품 감상이라는 답을 기대했던 기자에게 이 동문은 “특별한 비법은 없고 책을 많이 읽었다”고 답했다. “책을 보면서 혼자 상상하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어요. 제 고교시절 별명은 ‘문학소녀’였죠.”
여행을 많이 다닌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대학 생활은 어떻게 보냈냐는 질문에 이 동문은 “할 거 다 하고 많이 놀러 다녔다”며 웃었다. 이어 “친구와도 가고, 극회 팀에서도 가고, 방송반에서도 가고…. 방학 내내 여행 다니느라 바빴다”며 “덕분에 학생이 쉽게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재학시절 그녀는 항상 에너지 넘치게 캠퍼스를 종횡무진 하던 멋쟁이 여대생이었다. 아직도 이 동문과 만나면 서로 그녀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정도로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이 동문은 “연극학과 친구들과 뱀 팔찌도 맞춰서 끼고, 나팔바지나 15cm 통굽 신발처럼 유행하는 옷을 입으면서 멋 부리는 것을 참 좋아했다”며 이야기했다.
방송반 아나운서 출신이지만 1,2학년 때에는 연기도 했다. 그녀는 신인 여배우 우수상을 탈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했고 극회에서도 인기 만점이었다. 이 동문은 “그 때는 연극영화학과와 강당에서 같이 공연을 했는데, 극회에서 상을 휩쓸었다”며 당시 활동을 회상했다. 그녀가 20대에 할머니 역할로 받았던 연기상은 아직도 생생하다.
3학년 때부터는 DUBS 아나운서 활동에 전념했다. 매일 아침 방송했던 ‘동악의 새 아침’은 지금도 잠꼬대로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임했다.

 

진정으로 하고 싶던 일은 연기자

▲ 대학시절 이미자 동문과 그녀에게 성우를 권했던 교육방송국 선배 이장석(전자공학 80졸) 동문, 현재 그녀의 남편이다.
“원래 성우 할 생각은 없었어요.”
아나운서가 꿈이었다는 그녀가 성우 시험을 본 이유는 놀랍게도 제작부였던 선배의 추천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말 선배 말 한 마디에 시험에 응했냐고 묻는 기자에게 그녀는 “사귀던 사이였다”고 수줍게 웃으며 “지금 생각하면 내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 본 것 같다”라고 답했다.
DUBS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진행과 DJ 멘트, 발성에 대해 배운 것이 전부였던 그녀가 전혀 떨지 않고 시험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성우가 무슨 직업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때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성우 시험은 붙어도 그만, 안 붙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선배 성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그녀. 이 동문은 “라디오 드라마 더빙을 하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아나운서 멘트가 아니라 연기였다”고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DJ 활동도 하면서 MBC 전속 계약 기간동안 아무 불만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어요.”
라디오에서 ‘사연 속 주인공의 엄마’ 역할을 맡아 선배들에게 “너는 이제 노역으로 굳혔다”는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신기하게도 계약이 끝나자 소년 목소리를 연기하게 되었다. 남자 조연을 두어 번 맡고 나서는 바로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으면서 그녀는 노역이 아닌 소년 주인공 캐릭터를 도맡아 하게 됐다. 프리랜서 데뷔 3년차였던 신인 때는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를 맡기도 했다. 그녀는 이에 대해 “톰 소여의 모험에서 활약한 덕분에 기회가 왔던 것 같다”고 답했다.
PD가 감기 걸린 선배를 대신해 연기하던 그녀를 캐스팅한 것이다. ‘철이’ 하나뿐이던 선배의 역할로 데뷔한다는 사실에 고사했지만, PD는 “이미자 씨가 안 하면 아예 다른 성우로 바꾸겠다”며 그녀만을 고집했다.

자신감은 곧 자산이다

 

역할을 위해서라도 목관리가 정말 중요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이 동문은 “목이 필요한 사람들은 항상 목을 소중히 하고 보호해야 한다”며 강한 긍정을 표했다. 그녀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성우는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유발시켜 주는 사람이에요.” 이 동문이 정의한 성우의 역할이다. 역할에 빠져들어 캐릭터와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오직 ‘상상’으로만 표현해내는 일, 그녀는 “성우에게 필요한 것은 역할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도 일반 가요 프로그램과 달리 복면 속에 누가 있을지 각자 상상하며 듣기 때문에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성우라는 직업이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유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사실 저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못 느껴요.”
작가가 써 놓은 캐릭터 설명을 읽고 스스로를 캐릭터 그 자체로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매력은 스스로 잘 모르듯이 캐릭터의 진짜 매력은 시청자 개개인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성우가 설정을 ‘만들어’ 연기하는 것은 금방 들통이 나요. 그 캐릭터의 모든 성격을 다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연기가 제대로 되는 거죠.”
그녀가 오랜 기간 소년 목소리를 연기하면서도 여자 캐릭터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는 성우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사람이 될 건지 생각해야 한다”며 “‘내 것’을 가지고 가는 성우가 되라”고 말한다. 이 동문은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모든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자신감은 곧 자산”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의욕 넘치던 여대생의 에너지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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