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부터 한국 사회에 국정화의 광풍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다. 들끓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공청회와 같은 단 한 차례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일사천리로 작업이 진행되어 며칠 전 집필진 응모까지 마쳤다. 모든 절치가 비민주적이고 파행적인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대한국민은 사분오열되었다.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그 측근, 집권 여당이 보여준 행태는 막장 드라마 그 자체였다. 박 대통령은 한국사 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부끄럽게 느끼게 하고 아이들에게 한국을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하였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역사학자의 90%, 한국사 교과서의 99.9%가 좌편향 되어 있다고 대통령을 거들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왜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워야 하는가?”라며 검인정 교과서에 종북의 색깔을 입혔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한 술 더 떠 “현행 역사교과서는 적화통일을 위한 교재”이며 “국정화 반대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막장의 끝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는 박 대통령의 한 마디였다.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부분이 어디냐는 질문에 박 대통령이 던진 대답이었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국정화는 국민의 머리를 지배하겠다는 독재적 인식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국정화론자들은 역사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다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고를 용인하지 않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교과서 국정화는 국민사고의 국정화에 다름 아니다. 선진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정화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한국의 국정화 작업을 비판하고 있다. 국정화론자들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한국이 특수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국정화의 논리가 될 수 없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은 인간이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생각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혼이 비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다. 대통령은 우리의 혼마저 제멋대로 재단하고자 한다. 이미 반 이상의 국민이 ‘혼이 비정상적인’ 사람 판정을 받았다. 16세기 영국의 금융가 그레샴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른바 ‘그레샴의 법칙’이다. 아마 그런 그도 0.1%가 99.9%를 구축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노대환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