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학파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를 ‘인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노력’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역사학의 본질을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블로크는 소르본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53세의 나이로 자진 입대하였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자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결국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 블로크도 만약 지금 한국 사회에 살았었다면 꼼짝 없이 종북 좌파 역사학자로 몰렸을 것이다.
 2015년 10월부터 한국 사회에 국정화의 광풍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다. 들끓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공청회와 같은 단 한 차례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일사천리로 작업이 진행되어 며칠 전 집필진 응모까지 마쳤다. 모든 절치가 비민주적이고 파행적인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대한국민은 사분오열되었다.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그 측근, 집권 여당이 보여준 행태는 막장 드라마 그 자체였다. 박 대통령은 한국사 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부끄럽게 느끼게 하고 아이들에게 한국을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하였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역사학자의 90%, 한국사 교과서의 99.9%가 좌편향 되어 있다고 대통령을 거들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왜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워야 하는가?”라며 검인정 교과서에 종북의 색깔을 입혔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한 술 더 떠 “현행 역사교과서는 적화통일을 위한 교재”이며 “국정화 반대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막장의 끝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는 박 대통령의 한 마디였다.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부분이 어디냐는 질문에 박 대통령이 던진 대답이었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국정화는 국민의 머리를 지배하겠다는 독재적 인식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국정화론자들은 역사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다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고를 용인하지 않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교과서 국정화는 국민사고의 국정화에 다름 아니다. 선진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정화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한국의 국정화 작업을 비판하고 있다. 국정화론자들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한국이 특수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국정화의 논리가 될 수 없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은 인간이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생각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혼이 비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다. 대통령은 우리의 혼마저 제멋대로 재단하고자 한다. 이미 반 이상의 국민이 ‘혼이 비정상적인’ 사람 판정을 받았다. 16세기 영국의 금융가 그레샴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른바 ‘그레샴의 법칙’이다. 아마 그런 그도 0.1%가 99.9%를 구축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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