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현지(멀티미디어공학과3)

 세 번의 대외 활동과 두 번의 인턴 지원을 마치니 컴퓨터 배경 화면에 ‘자기소개서’라는 폴더가 생겼다. 다섯 편의 자기소개서가 들어있는 폴더를 나는 거의 열지 않는다. 어쩌다 참고할 것이 있어 열어볼 때면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끄곤 한다.
 나의 이야기를 써 놓은 ‘자기소개’서가 부끄러운 이유는 그 내용이 ‘자기소개’만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곳에는 나와 많이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요즈음 대부분의 자기소개서는 자신을 소개하는 글보단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내세운 픽션에 더 가깝다. 자기소개서가 서류 심사의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며,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사람들은 그 내용에 과장을 보태기 시작했다. ‘자소설’이란 신조어는 이런 상황에서 생겨났다. 자기소개서의 줄임말인 ‘자소서’에 소설이라는 글자를 붙여 만들어졌다. 허구가 태반인 자기소개서를 비꼬는 말이다.
 하지만 부끄러운 과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기소개서에 자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실 그대로 적기엔 기업에서 내 주는 질문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솔직히 대답하면 기업에서 나를 뽑을 리 없기 때문이다.
 나의 첫 자기소개서 성장 과정 란은 “내가 어렸을 때”로 시작한다. 나는 솔직하게 부모님과 내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 온 과정을 썼고 인터넷상의 ‘좋은 자기소개서’라는 예시들은 그것이 틀렸다고 했다. 예시들의 첫머리는 대개 필자의 좌우명으로 시작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노력은 산을 움직인다.”와 같이 넘치는 열정을 드러내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예시들을 보고 나는 첫머리를 “1등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로 고쳤다. 내 성적표에 적혀있는 B+과 C+들이 그 말이 거짓부렁임을 증명하지만 모른 체 하고 좌우명에서 두 번 엔터를 친 뒤 나머지 내용들을 지우고 성적이 좋은 과목들만을 열심히 강조했다. 내가 수강한 과목 중에는 운 좋게 시험문제가 나와 편하게 A+ 성적을 받은 과목도 있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팀 프로젝트를 혼자 밤을 새워 끌고 간 뒤 B+ 성적을 받은 과목도 있다. 수업에 들인 노력과 고생 등은 당연 후자 쪽이 몇 배는 심했다. 하지만 담긴 것은 전자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기억을 조작했다. 지루하기도 했던 수업을 나의 인생을 흔든 수업인 양 쓰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내용을 칭찬했다. 글자 수가 늘어 가면 늘어갈수록, 새카맣게 박힌 글씨들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완성된 자기소개서는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부끄러워지는 한편, 또 어쩐지 서글퍼지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얼굴도 몸통도 손발도 올록볼록한 나를 평평한 종잇장 위에 눌러 담다보니 이상한 모양으로 펑퍼짐하게 눌려 버린 것이라 애써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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