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데이팅 앱 가입자 300만 시대 … ‘짝’에 대해 생각해보다

 
 전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 받았다. 여름 말미, 매미도 울지 않았다. 위로해주던 술친구들이 말했다. “소개팅 앱 한 번 깔아봐”. 노래 제목도 있지 않던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맞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

 

1. ‘소셜 데이팅 앱’과의 만남

문득 비난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여자 친구와의 만남이 그렇게도 가벼웠느냐고, 결국은 연애를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지 않은 만남이 아니었느냐고, 소위 인터넷으로 이뤄지는 ‘팅’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처럼 인스턴트식 만남을 시작하려는 것이냐고. 갑자기 시작도 하기 전 두려움이 앞섰다.
소셜 데이팅 서비스 이용 회원수가 300만 명에 달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냥 눈 딱 감고 해보기로 했다. 나도 저 300만 명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위로 하면서...
반은 호기심, 다른 반은 외로움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무엇을 얘기할 수 있으랴. 그림은 두 눈으로 봐야, 음식은 혀로 맛을 봐야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2. 나를 흥정하기 시작하다

시작하자마자 까다로운 난관에 부딪친다. 소개팅 앱 가입은 수능시험만큼 어려웠다. 이 앱은 노골적으로 ‘나’를 캐내기 시작한다. 키는 얼마나 됩니까. 체형은 어떤 편입니까.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학교는 전문대입니까, 4년제 대학입니까. 지방입니까, 서울입니까. 직업은 무엇이고 회사는 어디입니까.
무엇보다 사진을 세 장 이상 요구했다. 텍스트는 ‘밝은 정면 사진’, ‘깔끔한 배경이 있는 사진’ 따위였지만, 예시의 사진은 모델을 닮은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인생 사진’을 찾아 휴대폰을 뒤져야 했다. 인생에서 건질 수 있는 가장 잘 나온 사진 말이다. 살면서 외모의 중요성을 얼마나 많이 경험해 왔던가. 후보를 추리고 추려, 딱 석장을 골랐다. 그렇게 스스로를 포장하는 일을 마쳤다. 어느 정도 부풀려진 부분이 있음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게 바로 포장의 기술이 아니던가.

3. “평가가 완료되었습니다”

이 앱을 추천해 준 친구는 평가가 끝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봤으나 아무도 평가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앞서 일었던 회의감은 없어지고 서운함만 남았다. 나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이렇게도 없다니. 기다리다 지쳐 그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당분간 이별의 상처는 혼자서 치유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느닷없이 진동이 울렸다. 이틀이나 지난 뒤였다. “평가가 완료되었습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결과를 확인한다.
구태여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
탈락이다.
만감이 교차했고,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합격 기준에 비해 아쉬운 점수도 아니었다. 결국 어디 가서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일이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
며칠이 지나, 소개팅 앱을 삭제하면서,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보기로 한다. 우리는 왜 이리 ‘짝’을 찾아 헤매는 것인가.

4. 우리는 사랑하려고 산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소개팅 앱이 가져오는 외모지상주의나 학벌주의의 폐해, 또는 악용에 의한 부작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연을 정하는 데 신체적ㆍ금전적 조건이 뒤따르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를 충족시키는 매체로 오늘날 모바일이 선택됐을 뿐. 따라서 이 새로운 데이트 방식은 이미 새롭지 않다. 이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 역시 내리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탈락했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나쁘기도 하므로.
대신 필자가 좋아하는 전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본래 사람은 팔이 넷, 다리가 넷, 하나의 머리에 얼굴이 둘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 인간들이 신들에게 반역하자, 제우스는 이들을 두 쪽으로 쪼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갈라진 반쪽이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도록. 그래서 우리는 늘 외롭고, 자기 반쪽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사랑하기 위해 살고 있지 않은가.

5. ‘한 번 더 도전’이냐 ‘새로운 모험’이냐

당신의 짝은 휴대폰 액정 너머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처럼,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나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을 내 반쪽이, 소개팅 앱의 가입 조건을 만족시킬 만한 높은 수준의 외모나 학력,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금 사막에서 물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개팅 앱의 진입장벽을 통과하지 못해 두 번, 세 번 도전하고 있는 당신, 그 너머에 내 반쪽이 있노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재수ㆍ삼수가 뭐 그리 대수인가. 자신감을 갖고 벽을 뚫어보라. 다만, 당신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실망하지 말고 얼른 이곳을 떠나자. 필자가 탈락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세상은 넓고, 인연은 많다. 그리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당신과 내가,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연애를 할 수 있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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