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까닭에, 언젠가부터 기자를 꿈꿨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자신의 역량부족을 절실히 느꼈다. 사실을 글로 풀어내려면 그 안에 숨겨진 맥락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겐 그런 능력이 부족했다. 사전 정보나 배경지식 없이 진행된 몇 번의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작성된 기사들은 그저 수박 겉핥기 수준에 그칠 뿐이라 느꼈다.
수습을 거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날카롭고 풍부한 기사를 쓸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아직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지도 못했음에도 어느새 수습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학내 언론사의 기자로 이름을 밝혀야만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기자’로 소개하는 것이 마치 멀고 낯선 사람을 소개하는 듯 어색하다. 기자가 되고 싶기에, 기자는 내게 커다란 짐처럼 부담스럽다.
기자가 하는 일이 결국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기에, 내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정호승의 시 구절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곧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니 뉴스도 결국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루는 일이지 않을까. 짐짝 같은 부담감이 몇 배는 더 커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방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녹여내고 싶다. 다만 녹여내고 풀어내는 과정은 끝없이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숙제이다.
코믹 저널리스트 조 사코는 자신의 언론관을 ‘중립적이고 편파적이지 않되, 고통 받는 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립적이고 편파적이지 않기엔 나는 아직 세상을 보는 눈이 좁고 부족하며, 고통 받는 자의 편에 서려하니 나는 진짜로 고통에 허덕이는 이들을 접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서야 이 경구를 되새기는 것은 앞으로 학내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약자의 편에 서고 싶은 까닭에서였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럴 여건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룬 한 편의 글로 누군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에 조금 더 다가가는 것이 될 테다. 그렇게 서투른 글자들로나마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길, 두서없는 글자들이 나를 설명할 수 있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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