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하면 생각나는 길상사는 서울의 3대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 자리에 있는데, 그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길상화라는 법명의 김영한님이 당시 시세 천억 원이 넘는 그 자리를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은 후 시주를 해 1997년에 지어지게 됐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의 천억 원이라면 지금은 얼마일까 궁금하기에 앞서 그 많은 돈을 시주한 길상화 보살의 진정한 무소유에 대해 알 듯 말 듯 하다.
 비운다는 것! 요즘 같은 물질만능 시대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는지 모르겠으나 70여 년의 생을 살면서 나름 터득한 진리는 세상사 모두가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내 것이 안 될 것은 죽어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자신의 피나는 노력도 없이 쉽게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오늘날의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자.
 인정은 갈수록 메마르고 이기주의가 팽배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제의 동지에게 미련없이 등을 돌려 적이 된다. 인명경시 풍조의 만연으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쯤으로 생각하고 나만 잘 살면 되지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이 만연되고 있지 않나 하는 슬픈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는 법이다. 만약 무인도에 혼자 있다고 생각해보자. 요즘처럼 복잡하고 답답한 세상에서 살다 무인도에서 혼자 지낸다면 며칠 동안은 호젓함과 편안함, 자유를 만끽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외롭고 쓸쓸하고 무료해서 결국은 우울증에 걸리고 아마도 생존의 어려움까지 겪게 되지 않을까!
 각종 공해로 인해 오존층이 파괴되고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기상변화가 예상된 가운데 올해 여름은 특히 무더웠고 오랜 가뭄으로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그 여름이 있었기에 높푸르고 아름다운 쪽빛하늘과 살갗을 애무하는 가을의 미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 세상은 욕심대로가 아닌 순리에 의해 돌고 도는 것이다. 무엇 하나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100개 중 51개를 주고 49개를 취하는 자세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51개와 49개의 차이는 2개다.
 숫자상의 2개는 별 것이 아니지만 요즘은 반(半)개, 아니 1/3개 때문에 오랜 우정을 깨버리고, 형제간에 의리가 갈라지고 간혹 그 것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일도 있다.
 남에게 2개를 양보하며 살아간다고 내가 남 보다 더 못살까? 현실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가다보면 양보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여유로운지 내 것만을 챙겨온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못사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결국 내 것이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없어지고, 내 것이 되려면 남에게 다 주어도 나도 모르는 사이 내게 오는 이치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단지 인식하지 못했을 뿐.
 그럴진대 왜 힘들고 인심 사납게 세상을 살아가는가. 시세 천억 원의 요정 대원각을 흔쾌히 보시해 한국불교의 대표적 가람을 이루게 한 길상화 보살의 무소유 실천이 우리들의 마음의 원천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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