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바라본 전쟁의 ‘진짜’ 얼굴은?

 

 1971년, 존 레논의 솔로앨범 ‘imagine’은 발매됨과 동시에 전 세계를 강타했다. 노래를 틀자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평화와 반전의 메세지가 담긴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국가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누군가가 죽거나 죽을 필요도 없고/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봐요’(Imagine, 존 레논)
‘상상해보라’라는 가정으로 시작하는 이 명곡은 평화가 결여된 현실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강조하며 전쟁과 빈곤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조명한다.
존 레논이 음악을 통해 반전(反戰)주의의 공감과 확산을 이끌어냈다면, 벨라루스 저널리스트 출신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그녀가 쓴 소설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다른 어떤 작품보다 한층 더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작가는 온 유럽을 누비며 2차 대전에 참전한 200명의 여자들을 만났다. 그렇게 수 천 건의 인터뷰를 녹음했고 논-픽션 형식으로 이를 재구성했다. ‘목소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책은 1985년 발간 후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그리고 2015년, 그녀는 역대 14명뿐인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그의 작품이 지닌 가치를 증명했다.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말이다.

 

여자의 몸으로 전쟁을 겪다

작가는 소위 ‘전쟁문학’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에 그 어떤 전쟁영웅이나 남자도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녀는 전쟁에서 가장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여성의 이야기로 소설을 채워간다. 가장 약한 존재가 들려주는 전쟁 이야기, 그것이 전쟁의 참 모습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오직 그들만이 기억하는 전쟁을 들려준다.

“진군할 때였는데, 우리가 지나간 모래 위로 빨간 얼룩들이 남는 거야. 왜, 우리 여자들의 그거 있잖아... 가는 내내 피 냄새가 진동을 했어. 그런데도 우리에게 지급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

전장에서 생리가 터져버린 병사의 이야기다. 그들은 여자의 몸으로 겪어야 했던 전쟁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열여덟의 소녀병사들은 매일 쌓여가는 수 백, 수 천구의 시체들을 보고도 울지 않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포탄의 한 가운데서 자기 몸무게에 두 배에 달하는 부상병들을 끌어와야 했고, 피범벅이 된 병사들의 속옷을 빠는 것도 그들 몫이었다. 처음 사람을 죽이던 날 엉엉 울어버린 소녀, 전장에서 고생만 하다 돌아와 어머니도 동생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야윈 몸... 전쟁터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참혹한 곳이었다. 그곳엔 파시즘의 몰락이니 게오르기 주코프 같은 영웅이니 하는 것들은 없었다. 전쟁이 남긴 건 단지 매일 밤  꾸는 죽은 병사들에 대한 악몽이나 가족과 친구를 잃은 상처뿐이었다.

 

환영받지 못한 훈장

1983년 처음 작가가 집필을 끝냈을 때, 검열당국은 전쟁에서 살아서 돌아온 소비에트 여성들의 이야기가 영웅담이 아니라는 이유로 2년간 이 책의 출판을 금지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여자들에게 환대와 존경어린 눈빛을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가는 이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그들의 전후(戰後)의 삶까지 섬세하게 조명한다.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훈장을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내가 부상당한 몸이라고 누구한테 털어놓겠어? 말했다가, 나중에 직장도 못 구하면 어떡하라고. 결혼은? 우리는 물고기처럼 입을 다물었어....”

여자들은 전쟁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전쟁을 잊어야만 했다. 그들은 참전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높은 구두를 신는 법을 새로 배워야 했고, 4년간 군복에 익숙해진 몸을 원피스에 억지로 구겨 넣어야 했다. 그들에게 나라가 준 메달이나 훈장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한 남자의 아내로 돌아가야만 했고,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해야했으므로. 전쟁이 앗아간 여자의 삶을 전쟁이 되찾아 주리라는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

2차 대전이 소련에게 승리를 안겼지만 그 이면에는 2천만 명에 육박하는 소련 국민의 희생이 있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승전보를 울렸을 때 레닌그라드에서는 매일 천 명이상의 사람들이 봉쇄로 인해 굶어죽었다. 작가는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고. 그리고 그녀는 묻는다. 전쟁이 진정으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냐고. 
지금 전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는 ‘전쟁’이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수많은 나라에서 내전이 끊이지 않고, 목숨과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난민들의 수는 이미 지난 2차 대전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단 하나의 진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참혹하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겪은 전쟁에도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이다.
작가는 “인간사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전쟁’이라는 비밀을 풀 길은 단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녀의 작품은 시종일관 약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견지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보편적 역사가 아닌 ‘감정’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그 속엔 우리 시대의 아픔과 용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페미니즘을 넘어 보편적 인류애로 전쟁을 바라본 이 책을 통해 잘 몰랐던 전쟁의 실상에 주목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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