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철호 역사교육과 교수
 “국정 역사 교과서를 쓰는 나라가 무슨 검정으로 발행된 나라의 교과서를 비판할 자격이나 있느냐?” 십여 년 전 일본의 한국침략을 미화하고 정당화했던 일본 후쇼사 출판의 역사 교과서를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일본 측에서 툭 던진 이 한 마디가 비수처럼 목구멍에 꽂혔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공세를 강화하던 일본과의 ‘역사전쟁’ 속에서 갑자기 수세에 몰려 완전히 무장해제된 느낌이었다. 역사적 진실의 진위와 관계없이 이를 논할 자격조차 우리는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일본·중국과 역사전쟁의 포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적전 분열이 아니라 백기를 자초하는 역사 ‘내전’에 휘말리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이 총동원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적으로 민주적이고 선진화되었다고 알려진 국가들 중 국정제를 채택하는 나라는 없다. 일부 선진국들은 검정제마저도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와 창의성을 저해할지도 모른다며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조차 획일적인 해석을 ‘지향’하는 국정 교과서를 ‘지양’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정 교과서가 다양한 시각과 논쟁의 공간을 수축시켜 학생들이 자신들의 나라, 지역, 또는 세계의 복잡한 사건의 미묘한 뉘앙스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배제하게 만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다양한 시각을 바탕으로 이해력·비판력·창조력을 함양해야 하는 역사교육의 기본 목적마저 무시한 채, 미래의 주역들인 학생들에게 특정세력의 편협한 역사관을 주입함으로써 우민화시키려는 반교육적인 조치이다.
우리는 독재가 극에 달했던 유신시대에 처음으로 도입된 ‘국사’ 국정 교과서가 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로 미화하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정권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홍보물로 전락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부활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로 나아가려는 의도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더 이상 정권 혹은 특정세력이 교육의 중립성·자율성·전문성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논리와 입맛에 맞는 역사를 통제하는 시대착오적인 행위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연 국정화 추진자들은 만약 정권이 바뀌었을 경우에도  그 정권에 의해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집필되는 데 흔쾌히 찬성하고 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얽힌 설화가 있다. 그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결말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임금이 바람 불 때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리는 숲을 베고 다른 나무를 심었다고도 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귀를 드러내며 오히려 백성의 뜻을 귀담아들어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렸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어느 쪽의 결말이 바람직스러운지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진실을 가릴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큰 귀를 활짝 펼쳐 국민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써도 모자라는 세상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귀뿐만 아니라 눈마저 닫아버리는 어리석은 행위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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