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연 동문
 a. 마음을 바꿔라. b.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은 그 문제들이 발생한 때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a는 일상적으로 흔히 듣는 말이다. 마음을 바꾸라,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 네 마음을 보라. 그런데 이 말은 내가 어떤 문제에 봉착해서 마음을 바꿔야 할 때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b는, 어쩐지 다시 한 번 눈을 부비고 생각을 가다듬게 만든다. 적어도 이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기 위해 정신을 모아보게 된다.
출판계에 몸담아 오면서 갈수록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몸으로 느낀다. 출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지구 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80년대에 대학에 다녔던 우리 세대와 지금 세대는 마치 인종이 달라진 것처럼 사고와 정서, 문화뿐만 아니라 골격까지도 달라졌다. 이들에게서 우리 세대와의 공감을 찾으려는 것은 흘러간 물을 잡으려는 것보다 어리석다.
날로 어려워지는 출판계 현실에 대해 여러 가지 진단과 대안이 모색되어 왔다. 하지만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이 문제도 고구마 줄기처럼 연관된 사안들이 줄줄이 딸려 올라오게 된다. 즉 출판현상이 일어나려면 최소한 원고를 쓰는 저자와 그것을 만드는 출판사와 출간된 책을 읽어줄 독자가 있어야 한다. 그 하나하나에서 문제점을 든다면 저자 문제는 사회나 학계의 교육 과정 등에까지 확대되어 끝을 모르게 되고, 독자의 문제라면 사람들의 수준이나 사회 경향성에까지 이르게 되어 역시 줄기를 놓치게 된다.
20여 년 편집자로 일하며 느끼는 것은 역시 원고 단계에서부터 정성을 들인 책은 크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대라는 것이 출판을 통해 이루려는 각각의 목적과 상응하겠지만, 적어도 편집자의 냉정한 눈길과 꼼꼼한 손길을 거쳐 거듭 태어난 원고라면 베스트셀러는 아니더라도 관심 있는 독자들의 호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4월 1일 음식값 올리다 보니/냉면, 만둣국 한 그릇과/시집 한 권 값이 동일하게 되었다/한 끼의 배부름을 위한 것과/마음이 허전할 때 허기를 채우거나/싫증나도록 우려먹는/시집 값이 같다는 것은/참으로 모순이다.//나는 억울한 심정으로 독백을 쏟아낸다/시집 값 칠천 원/종이값이라고/나의 시는 그냥 공짜로 주는 것이라고…
유승배 시인의 ‘시의 값’이라는 시이다. 시가 실제로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는 없으나 영혼의 갈증을 적셔주고 감성의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시를 읽는 독자가 그렇게 느끼도록 책이 스스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을 다루는 편집자가 먼저, 먹고 입는 데 쓰는 돈 이삼십만 원은 아끼지 않으면서 책 사는 데 들이는 이삼만 원에 계산이 분주한 사람들의 부박함을 탓하지 말고 독자로 하여금 이삼만 원으로 일이백만 원의 가치를 얻었다는 기꺼움을 느끼도록 자신의 영역에서 노력해야 하겠다.
책 한 권을 산다 해도 마음을 울리는 내용은 단 한두 줄일 경우가 많다.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한두 줄. 그것은 저자가, 혹은 어느 깐깐한 편집자가 심혈을 기울여 다듬은 한두 줄일 수 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외연을 따지기보다 눈앞에 있는 이 한 문장을 벼리는 일. 그 작은 움직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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