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영탁 한문학과(경주) 10졸
 동전 두 닢이 ‘딸깍’,
도서관 열람실 5층 휴게실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주하는 시각은 아침 8시 10분경.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창밖의 우람한 느티나무에 이어진 正覺院(정각원)을 바라보며 잠겨있던 생각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따뜻하던 종이컵은 온기를 잃고 바닥을 드러낸다.
‘벌써 7여년의 세월이 지났구나!’
젊은시절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 늘 허전함을 느꼈는데, 그 심연에 漢文(한문)이 자리하고 있음을 모른 채 지내다 결국은 不惑(불혹)의 나이를 넘겨 동국대 한문학과에 학사편입을 하게 되었다. 이미 한문서당을 열어 오후에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던 터라 학교 수업은 오전과 야간에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북천 강변로를 따라 자전거로 통학하였는데 이로 인한 소소한 즐거움들이 꽤 있었다. 봄바람이 불어 올 때면 콧노래가 절로 나왔고, 하늘 높은 가을이면 상쾌한 기분에 머리까지 맑아졌다.  갑작스런 소낙비로 손수건으로 간신히 얼굴만 훔치며 강의실에 들어선 날도 있었고, 찬바람 불어오는 초겨울에는 자전거 페달을 밟은 열기를 식히지 못한 채 수업에 들어가 강의실이 사우나실로 변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 해가 흘러 졸업을 하게 됐다.
당시 우리 과에 있던 여러 晩學徒(만학도)들이 서로의 말벗이 돼주어 외롭지 않게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자식 같은 학생들에게 혹여 방해되지 않을까 마음을 쓰며 캠퍼스 생활을 했던 기억이 난다. 타 학과도 그러하겠지만, 예의 바른 학생들은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던 한문학과가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지 못해 아쉬움과 함께 졸업한 선배로서 책임감도 느낀다.
이 땅의 젊은이들의 꿈과 현실적 고민을 옆에서 지켜보며, 당당하게 앞날을 펼쳐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평소 즐겨 읽는 동양고전 ‘孟子(맹자)’의 글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小勇者는 血氣之怒也요 大勇者는 理義之怒也니 血氣之怒는 不可有요 理義之怒는 不可無라” (소용이란 혈기의 노여움이고 대용이란 의리의 노여움이니, 혈기의 노여움은 있어서는 안 되고 의리의 노여움은 없어서는 안 된다.)
젊은 혈기에서 비롯된 노여움을 다스리지 못해 주위 사람들에게 누가 될까 근심하며 인내하는 마음으로 살다가도,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던 선조들이 보여주신 의리에 대한 노여움은 모두의 가슴에서 불타올랐으면 한다.
오늘날 이 나라가 처한 분단 상황과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가정에서는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설정할 줄 아는 올곧은 지성을 지닌 東國人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만나든 세대 간의 벽을 넘어 떳떳하게 미소를 주고받는 선후배가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기쁘겠는가?
여름내 지쳐있던 마음에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2학기에는 후배들이 목표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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