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하는 ‘빅브라더’를 경계하며

 
 학창 시절, 학생주임 선생님의 두꺼운 매와 두발을 검사하던 날카로운 눈빛과 매주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서의 권위적인 조회시간을 기억한다. 당시의 학교는 효율적인 교육이라는 목표 아래 딱딱한 규율과 삼엄한 감시체계를 도구로 학생들을 지배하는 장소였다. 학생들은 교육체계에 순응하지 않거나 교직원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을 받았다. 학교 시스템은 위에서 아래를 향하는 철저한 수직적 권력을 형성하여 학생들을 관리했다.
이러한 ‘감시와 처벌’의 체계가 지배하는 곳이 어디 학교뿐일까. 문명의 발생 이래, 인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공동체의 질서를 벗어나는 이들, 혹은 그러할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관리할 수 있을까’였다. 이에 각종 형벌의 종류와 감시체계, 규율 등이 탄생했고 국가에서부터 지역사회와 학교 같은 작은 기관에 이르기까지 ‘감시와 처벌’의 권력이 작동하지 않는 곳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저자 푸코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권력이 형성되는지, 그 권력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죄인에 대한 ‘신체형’의 강도나 잔혹함 정도가 죄의 중함을 결정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국가는 죄수의 노동력을 인식해 ‘징역형’을 중시하게 됐고 이를 정치적, 경제적 도구로 사용했다. ‘군주의 위엄을 과시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권력’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권력’으로 이행된 것이다.
▲ 미셸 푸코
책은 부제 ‘감옥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형의 집행과 방법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하지만 푸코는 스스로 ‘처벌하는 이성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한 장을 문제시하려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 책의 역자인 오생근 교수에 따르면 푸코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곧 “감옥의 제도를 통해 사람들을 처벌하고 권력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기술 등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벤담의 유명한 ‘판옵티콘’ 감옥의 원리가 현대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고 말한다. ‘판옵티콘’이란 소수의 감시자가 감옥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감옥이다. 중앙 기둥의 보이지 않는 감시자가 전체 수형자에 대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감시는 곧 권력이다. 감시당하는 자는 감시의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불안해하며 위축된다. 감시하는 자는 감시당하는 자의 정보를 손에 쥐고 권력을 획득한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정부의 PRISM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하며 전 세계인을 불안에 떨게 했다.
한국의 국정원 역시, 해킹 프로그램 구매에 관한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길거리의 수많은 CCTV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녹화한다. 현대인들은 이 거대한 ‘판옵티콘’의 체제 아래, 여전히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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