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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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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야 교수의 한국의 도시 <7> 금강이 만들어낸 도시, 군산일본의 아스카 문화는 군산에서 흘러갔다

   
▲ 지금의 군산을 있게 한 금강. 세곡을 해상교통으로 운송하는 거점이었다.
 한반도의 도시들은 지방행정의 거점으로 자리 잡아야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여느 도시들과 달리 군산은 항구로서 성장해온 도시이다.
군산은 서해안과 금강 만경강 유역의 해군기지였으며, 내륙과 서해를 연결하는 금강수운의 포구이자 조세창고였다.
일제 강점기 군산항이 개항(1899년)하면서는 조계지와 공장을 갖춘 식민무역항이었고, 근현대기에는 대규모 산업생산단지로서 기능해왔다.

금강변을 따라 자리잡은 도시

군산의 북쪽경계인 금강변에는 높이 50-200 m 이하의 구릉들이 있어 군산의 주거와 항구의 입지들을 결정했다. 군산은 그 수심(5.5-11 m)이 낮고 조수간만의 해수면차(7.24 m)가 상대적으로 커서 실제로 항구로서 좋은 조건은 아니다.
때문에 역사 속에서 요구된 항구의 기능에 따라 각각의 구릉을 중심으로 상이한 입지에 조성됐다. 또한 본디 군산은 넓은 갯벌과 갈대밭이었다. 서포리부터 옥곤리, 남쪽의 취성산까지 모두 갯벌이었으며 경포천과 금강이 만나는 중동, 경암동, 경장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산이 한반도 서해안 지역의 지리적 거점으로 부각된 것은 백제시대 이후이다. 군산은 서해의 고군산군도를 통해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거점이었다.
또한 북쪽의 금강 하구와 남쪽의 만경강 하구로 둘러싸인 옥구반도를 통해 한반도의 내륙의 도시들과 연결됐다. 군산은 서쪽으로 서해, 내륙 동쪽으로는 익산, 남쪽으로는 김제, 북쪽으로는 금강을 건너 서천과 연결된 도시이다.
군산의 이러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중앙정부의 세곡을 해상교통으로 운송하는 거점이 됐다. 동시에 왜구가 금강을 통해 한반도의 내륙에 침입하고 조세창고를 약탈하기도 했다. 이에 군산 주변에는 14개소의 성곽과 8개소의 봉수대가 건립됐으며 금강과 만경강 유역을 방어하는 거점이 됐다.

백제 사비성에 이르는 유일한 입구

백제시대 금강의 흐름은 현재와 달랐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금강은 구암동에서 경장동, 미장들, 평사들을 지나 석교마을, 옥교마을에서 만경강과 만났다. 이어 당북리 돛대산과 금성리 박지산 사이를 지나 만경강 하루로 흘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군산시 주변 마을 이름(밧버들 마을, 안버들 마을 등)의 유래와 명칭을 본다면 현재 군산시의 땅은 육지와 떨어진 섬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군산은 갯벌이자 비옥한 농토였다.
때문에 신석기시대를 전후로 농경활동에 근거한 주거지가 형성됐다. 금강 변의 충적평야인 내흥동 사옥마을에는 기원전 3,000-2,000년 경의 조개더미가 발견됐으며 산북동 갈마마을, 신관동 신관마을, 선유도, 무녀도, 오식도, 띠섬 등에 유적들과 유물들이 발견됐다.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군산은 구릉지를 중심으로 강력한 권력의 중심지가 됐다.
삼한시대의 군산은 마한 3개 소국들의 영토였으나 369년(근초고왕 24)을 전후로 백제의 영토가 됐다. 당시 백제는 금강의 하구 지역을 기벌포ㆍ백강 혹은 웅진강구라 불렀으며, 그 내륙지인 현재의 군산을 백촌(白村)이라 불렀다. 기벌포는 백제의 사비성에 이르는 유일한 뱃길이었기에 군사적 요충지가 됐다. 특히 삼국통일전쟁이 발발하자 나당연합군과 백제, 그리고 당나라와 신라 간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아스카 문화의 시발점

한편 군산은 평화시에는 백제의 바닷길이 되어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 420-589년)의 리우송(劉宋朝ㆍLiú Sòng), 리양(Liangㆍ梁), 기(Southern Qiㆍ南齊), 첸(Chenㆍ陳), 진강(Jiankangㆍ建康) 등의 지역과 교역했다.
또한 일본의 아스카 시대(飛鳥文化, 538-710년) 나라(奈良縣) 현과 왕래하는 사신들의 선박의 출입도 잦았다. 이즈음 아담하고 섬세한 백제의 문화가 일본의 나라를 중심으로 아스카(飛鳥)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교역을 통해 양측의 문화가 전파되었으며, 사신도 주고받았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면서 일본으로 백제난민이 대거 유입됐고 이 때 백제의 불교가 일본으로 전파됐다. 일본 최초의 절 아스카사(飛鳥寺)도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건립하였다.
삼국이 통일된 뒤 757년(경덕왕 16년)에는 전국의 영토가 9주로 정비됐다. 이에 따라 전주는 임피현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이 됐다. 당시 임피현은 감물아현, 마서량현, 부부리현을 포함했다.
통일신라가 지역명칭을 당나라식으로 바꾸면서 감물아현은 함열현으로, 마서량현은옥구현으로, 부부리현은 회미현으로 개명됐다.
이후 군산은 후백제(892-936년)의 활동거점이 됐다. 중국의 5대10국(五代十国) 시대에는 남부 중국의 정치ㆍ불교ㆍ문화의 거점이었던 우유에(吳越國, Wuyue 907-978년)의 수도 쉬프(Xifu)와 교역이 이뤄졌으며 후당(後唐, 923-936)의 수도인 루오양(洛阳ㆍLuoyang)과의 교역 통로이기도 했다.
공과대학 건축공학부 ghan@dgu.edu

한광야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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